<칼럼> 만향(曼香)
작성일: 2013-06-14
만향은 추사 김정희의 200여개 호(號)중 마지막 지은호이다. 길 먼 만(曼)자에 향기향(香)자로 은은하게 이어가는 향기가 오래 퍼지란 뜻인 갑다.
지기 중에 난을 좋아하여 탐석한 돌에 풍란을 붙인 것을 석부작(石附作)이라 하는데 한 점 키워보라지만 워낙 내가 게을러서 잘 키울 수가 없을 것 같아 망설이기 수년, 두상(頭狀)돌에다가 붙여 달랬더니 겨울철 동면중이니 봄에 오란다. 사시사철 돌이나 나무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난도 동면을 한다나?
볕이 잘 드는 창 쪽에 풍난대엽을 두곤 틈틈이 도랑물을 뿌려 주었다. 밤엔 클래식음악을 들려 주어선가 가져 온지 달포 만에 움이 삐죽이 트고 있었다. 새싹이거나 뿌리거니 여겼더니 몽글몽글한 꽃대 세봉오가 나오고 있었다. 맹물만 먹고 자라 결실의 꽃을 피우려 하니 그저 놀랍고 신통 하달까! 이런 아름답고 신비스런 일들이 오래 지속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숙제인 것 같다.
노자(老子)의 사상무위자연(無爲自然)설 은 우주를 있는 그대로 그냥 두란 해석인 것 같다. 꾸밈없이 그러한 대로 사는 삶, 無爲는 人爲의 반대개념으로 자연을 건드리지 말고 가만두라는 말인 것 같아.
나는 탐석, 분재, 난을 캐는 자들을 보면 탐욕스럽다는 생각이 앞서 탐탁찮아 거리를 두곤 애착심을 갖질 안았다. 이유는 직장생활을 할 적 재욕(財慾)을 부리던 자가 어느 날 TV뉴스에 비치는데 공교롭게도 전국구 난(蘭)회 회장을 한다는 것을 알 곤 더더욱 마음을 굳히기에 이른 것 같다.
蘭草畵라하면 石坡 李昰應이요, 秋史 金正喜일게다. 하지만 추사는 20년간 붓을 꺾곤 난을 그리지 않았다고 했다.
난을 치지 않은지 스무 해
우연히 화의(畵意)가 생겨나 마음 한 가운데서 하늘로 솟네
문을 닫고 두리번두리번 찾아 나서니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이구나
붓을 꺾은 추사가 제자 달준에게 난을 그려준 제시(題詩)다.
만역 어떤 사람이 있어 구실을 만들어 이난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면 비야리성에 살았던 유마의 침묵으로 그걸 사양하리라. 만향(曼香 오래 은은히 가는 향기, 추사의 호 쓰다.
이, 부작(不作 그리지 않음)의 난화야 말로 한 빗방울로 세상 전부를 적시는 유마경 한 경전에 값한다.
초서와 예서의 기이한 필법으로 이를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어찌 좋아하겠는가. 추사의 호 구경(謳竟 끝내주는 향기)쓰다.
만향이나 구경은 추사의 호이기도 하지만, 이 난초의 의미를 전하는 의미역시 깊기도 하다. 추사가 달준에게 왜 이 그림을 전했을까? 오늘날 ‘추사체가 천하제일’ 이라고 말하는 글씨가 당시엔 법식을 초월한 무법의 붓끝처럼 보였을 것이다. 괴(怪)라는 말은 가위 추시체 글씨를 두곤 그런 놀라움의 표현일 게다.
주) 畵意 그림을 그리려는 마음.
유마의 불이선 維魔經 不二禪蘭
怪 이상야릇하다.
<임부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