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6.25에 대한 인식이 문제로다
작성일: 2013-06-27
어김없이 찾아오는 6월은 우리민족에게 너무도 잔인한 달이다.
6.25 63주년에 휴전 60주년이 되지만 아직도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휴전은 정전(停戰)에서 개전(開戰)으로 치달을 수 있는 불안감을 주고 있다.
필자는 군 복무시나, 전역 후에도 6월이면 “언제 전흔(戰痕)이 치유되고 남과 북이 통일될까?”를 생각하며 “그럴 날이 꼭 오겠지”하는 믿는 마음으로 자위를 하였는데 아직도 요원하고 오히려 제2의 6.25가 발발하여 남북이 공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솔직한 생각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 두 번 다시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6.25를 상기하는 의미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6.25가 북한이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중공 및 소련과 야합 또는 사주를 받아 남침을 한 것이라는 사실은 전 세계가 모두 알고 있고, 이는 16개국의 참전과 5개국의 의료지원이 있었던 사실을 입증하고 있음에도 유독 당사국인 우리나라만이 국민 대다수의 남침이라는 절대적인 인식에서 일탈하여 일부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종북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기가차기 이를 데 없다.
어느 나라고 보수와 진보는 양립하여 나라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극단적인 보수와 진보를 위장한 좌파와 종북세력이 대립하여 북침운운 하면서 극과 극을 달리고 있고, 참다운 진보는 보이지 않는다.
6.25는 남침이라는 확실한 사실을 좌파 및 종북세력만 부정하고 있다. 우선 법률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좌파와 종북세력은 6.25가 북침이라면 증거를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사실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마도 전 세계 어디에도 우리나라가 북침 한 것이라고 하는 국가는 없을 것이다. 북한의 6.25 남침으로 인한 피해나 전흔에 대한 통계 등은 차치하고, 정전협정 이후 60년간 북한의 470건 도발에 사망한 군·경·민간인은 최소 310여명과 국내외에서 납치 된 인원이 3811명으로 추산되어 도발 시 마다 전 세계가 경악한 사실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북한의 도발사를 살펴보면 전후 복구시기인 1960년~1970년대에 남한 폭력혁명으로 적화통일 하겠다는 전략의 전술로 무장공비를 침투시키어 후방지역 교란은 물론, 반공정권의 요인 암살을 노린 1968. 1. 21.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기습 기도사건 뿐만 아니라, 같은 해 10. 30. ~ 11. 2.일간 울진·삼척으로 3차에 걸쳐 무장공비를 120여명을 남파시킨 사건은 물론, 1970. 6월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사건에 이어 1974. 8. 15. 광복절 행사시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사건과, 1976. 8. 18.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는 미군 및 아군 장병에게 도끼를 휘둘러 장교 2명이 사망하고 사병 9명이 중상을 입힌 사건이 있다.
2000년대에는 1999. 6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트집 잡아 1차 연평해전을 일으켰으나, 우리 해군이 즉각 응사하여 어뢰정 1척을 격침하자 5척이 북으로 도주 참패를 단한 후 한·일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2002. 6. 29. 기습적으로 연평해전을 일으켜 우리 해군이 6명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과 2006년 1차에 이어 2009년 2차 핵실험을 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대청해전을 일으킨 바 있음은 물론, 2010년대에는 3대 세습으로 김정일 후계자로 김정은이 지명되었고, 2010. 3. 26. 천안함을 어뢰로 폭침시키어 40여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고, 2010. 11월에는 연평도에 장사포로 폭격하여 해병대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으며, 2013. 2. 12. 3차 핵 실험으로 전 세계를 경악케 한 사건이 있다.
위 내용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부정하는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러한 북한을 규탄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월남전참전고엽제전우회 거창군지회장 박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