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철면피화상
작성일: 2013-07-04
철면피는 쇠鐵 얼굴面 가죽皮 자로 간사한사람의 본보기로 “왕광원(王光遠)의 낫 가죽은 열 겹 철갑(鐵甲)만큼 두껍다”라는 중국의고사성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란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비슷한말도 있다. 화상畵像)은 사람의 얼굴을 꼬락서니 나빤대기 라는 둥 낮잡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시인 미당 서정주는 철면피하게도 일본제국주의와 군사독제에 아부하여 민족을 배반한 행적을 남겼다. 가미가제 도고다이특공대원으로 죽은 일본오장에게 바친 헌시는 읽기가 낯 뜨겁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중략)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온 원수 英美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항공 오장 마쓰이 하데오여.”
미당의 비열한 행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世代를 넘어선다. 1987년에 쓴 전두환 56세 생일 축시를 보면, “한강을 넓고 깊고 맑게 만 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 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남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였나니(중략).”
작가 김성종은 “미당은 시성이 아니라 시를 더럽힌 시인이었다. 그에게는 지식인으로서의 정의나 양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시적감작과 감성만이 존재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시적 기교와 감정적 문체는 부도덕한 사람도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 바로 미당이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당을 시성(詩聖)이라 일컫는 얼빠진 미당의 제자사이비 지식인들 덕분에 고창에는 그를 기리는 문학관 까지 국비로 운영되고 있다. 친일반역분자들이 활개 치는 현실을 개탄할 뿐이다.
매천 황헌은 구한말 시인 문장가로,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구례에서 칩거하며 살다가 1910년 나라가 망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해 절명시를 남기고 음독자살 했다. 그때 나이 56세. 절명 시 한 수가 가슴을 저민다.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식자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그는 ‘내가 죽어 의를 지켜야 할 까닭은 없다. 다만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500년 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책임을 지고 죽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란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반면에 미당은 같은 시인으로 지식인을 자처하는 자이면서 나빤대기에 두꺼운 철판을 깐 철면피화상(鐵面皮畵像)이 아니고선 어찌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는 그딴 글씨 쪼가리 나부랭이잔재주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서구의 경우 지식인 그룹 가운데서 작가나 시인들은 단연 時代를 행동하는 지성으로써 이끌어 제2차 세계대전 시엔 사르트르, 까뮈, 말로, 앙드레 모로아, 지드, 아라공, 베르코르 등 많은 작가들이 나치에 저항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였다.
반면에 우리의 지식인들은 일제와 군부독재에 빌붙어 충성을 맹세하길 서슴질 않았다.
우리니라의 식자(識者)들이 이 모양 요 꼴인 철면피화상인 것을 보면 매천의 말마따나 정말 지식인 노릇 하기가 어렵긴 어려운 갑다.
<임부륙 r200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