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절대빈곤 타파의 신화를 쓴 영웅 박정희
작성일: 2013-07-11
박정희를 폄하하는 또 하나의 시각은 절대빈곤을 없앤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
그까짓 것을 하려고 장기 독재를 했는가 하는 비판이다 젊은 학생들이 주로 하는 주장인데 절대빈곤을 전혀 겪어보지 않은 세대가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 될수 있다. 그런데 제3세계의 절대빈곤을 얘기해보면 미국학생들이 오히려 더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인다. 굶주림이 무엇인지 모르는 한국학생과 미국학생이 다르지 않은데 한국 학생이 더 참지 못하는 것은 절대빈곤 이야기를 지겹게 들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졸부의 아이들이 부모가 고생하던 이야기를 늘어 놓으면서 너희는 복에 겨운줄 알아라고 하며 공치사하는 것을 견딜수 없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더구나 배곯은 자랑 다음에는 현실영합까지 강요하려드니 젊은이들이 분노하지 않을수 없다 산업화에 따르는 계급모순의 첨예화에서 이들의 정치화는 그 사실이 바로 한국 사회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고 보릿고개 이야기는 궁상떠는 기성세대의 푸념 정도로 무시되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상대적 빈곤이 절대적 빈곤보다 결코 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기세등등하게 주장하는 것은 딱하게 보인다.
굶주림은 간디 옹처럼 한달 넘게 단식하다가 숨을 거두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일의 삶, 동물적 생존 그자체의 불확실성이 만들어내는 도덕적 타락과 별리 현상의 전체를 포괄하는 무서운 진실을 뜻하는 것이라 하겠다.
배고픔을 체험할 수 없는 사람들은 남의 체험을 통해서라도 알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배고픔을 모르는 우리 젊은이들이 단 한 세대전의 체험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을 뿐 아니라 50억 인류의 3분의1이나 되는 사람의 삶으로부터도 차단되어 있음을 예사롭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절대빈곤의 극복은 어떠한 경우에도‘그까짓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생들이 이념서적을 200권씩 이상 독파한다는 소문이 퍼져서가 아니다. 이념서적 독파 정도가 아니라 그 책들을 써내던 사람들이 한국인의 각고에 찬 노력과 성공을 깊이 존경하게 되었으며 박정희라는 개인의 지도력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한국의 산업화는 후진국 인민들에게 큰 희망을 준 성공의 모범이요, 전형인 것이라하겠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적 토대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가능하다는 확신을 박정희는 이들에게 심어주었다 한국은 세계속의 희망의 나라가 되었고 박정희는 이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확신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올바른 평가 없이는 우리는 자기기만 속을 한동안 헤매게 될 것임을 지적하고 싶은 것뿐이다.
<월남전참전고엽제전우회 거창군지회장 박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