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目

작성일: 2013-08-22

속담에 “몸은 千냥이고 눈은 九十냥이라 그만큼 눈이 보배라는 뜻”아닌가. 소경이 갑자기 눈을 뜨게 되면 길을 잃게 된다. 소경이 집을 찾아 가기위해선 도로 눈을 감아야 된다는 속어가 있다.
화담 서경덕 선생이 길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자를 만났다. 너는 왜 어찌 울고 있느냐. 제가 세 살적에 소경이 되어선 40나이 되도록 걸을 때는 발을 의지해서 보았고 물건을 잡을 때는 손을 의지해서 눈을 대신하였으며, 목소리를 듣고 사람을 분별할 때는 귀를 의지해서 보았고 냄새를 맡아 물건을 살필 때에는 코를 의지해서 보았습니다.
딴 사람들은 두 눈만 가졌지만 저는 수족과, 이목구비(耳目口鼻) 모두가 내 눈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어디 수족과 귀와 코뿐이겠습니까. 해가 이르고 늦은 것은 피로한 것을 보고, 물건의 형용과 빛깔은 밤에 꿈을 꿔 보아서 살아가는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고 의심과 혼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길을 걸어오다 홀연히 두 눈이 밝아지고, 눈동자가 저절로 열려 버렸습니다.
눈 目!
눈을 믿지 말라.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은
오직 눈과 귀만을
믿기 때문에
사물이나 사건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다.
언젠가 코미디언의 대부 고 이주일이 국회의원을 지낸 후 한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자기가 나라 안에서 제일 잘 웃기는 줄 알았는데 국회에 들어가서 본즉 자기보다 훨씬 더 잘 웃기는 의원들이 지천 이라고 술회를 했다.
하늘은 잡아 매놓고, 땅은 싣고 있다. 무릇 하늘이 떨어지지 않고 땅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잡아매거나 싣고 있어서이니,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 서랴? 사람에게 다스림이 있다는 것을 고사에 비유컨대 저 뇌고(雷鼓)의 울림과 같다. 무릇 스스로 울릴 수 없는 것은, 울리게 해야 한다. 道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천하에 가득하여도 그 충만함을 보지 못한다. 道는 안색에 모이고. 살갗에 감지된다. 그 오감(五感)을 구하여도 아무도 그 때를 알지 못한다. 땅에 끝없이 펼쳐있고, 하늘에 혼돈하니, 혼돈하고 혼돈하여 아무도 그 문을 얻을 수가 없도다. 그러므로 道는 입이면 소리가 나오고, 귀면 듣고, 눈이면 보고, 손이면 가리키고, 발이면 밟으니, 사물이 의지하는 바가 소경이나 별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살기 마땅한 것은 살고, 죽기 마땅한 것은 죽는다”고 하니 최상의 성스러운 사람은 입으로 헛된말을 하지 않고, 손으로 헛되게 가리키지 말라했거늘 작금 국회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두하였으나 선서를 하지 않는 한 잘잘못을 따질 수 없다고 하니 무슨 그런 허수아비 같은 법이 통용되는 이 나라국정의 누수현상을 보면서, 코미디언 고 이주일의 말마따나 국회의원들 웃기고들 자빠졌다 할 일이외다.
<임부륙 r200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