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사노라면”

작성일: 2013-08-29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펴라/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오순도순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이시(時)같은 것은 작자 미상의 노래 “사노라면”의 가사다.
이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다 알수 없는 힘이 솟구치는 걸 느낄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 아니겠는가? 그건 당신이 이 노래의 가사를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위인전을 보면 대개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가난하고 힘겹게 산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당신이 현재 힘겨운 젊은 시절을 보낸다면 나중에 감동 어린 청춘을 회상하는 소중한 시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 노래를 들으면 그런 힘이 저절로 솟는 것 같이 느껴진다. 강원도에 어느 주조회사는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술을 빚어 팔고 있는데 그 주조회사의 이름이“사는 동안”이다.
원래 강원도 감자로 만든 술 이름이었는데 이술이 성공하자 아예 회사 이름을 “사는 동안”이라고 바꿨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이름에 반해 어느 여름날에 강원도에 있는 동강에서 밤을 술로 보낸적이 있었다. ‘사노라면’이나 ‘사는 동안’이라는 말에는 말 줄임표(....)가 저절로 생각이 난다. 글자에는 없지만 그걸 읽는 사람에게는 그런 여운을 준다. 이 여운이 바로 이 워딩의 매력이라 하겠다. 여운을 주는 말끝을 통해 생각의 여지를 주게하는 워딩 테크닉이라 하겠다. 마음속 감정이나 머릿속 생각을 굳이 다 말로 해야 아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나 동양은 비언어적 사회이고, 서양은 상대적으로 언어적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비언어적 사회일수록 여운을 남기는 워딩이 효과적일 수 있다. 동양화로 보자면 여백의 미라고 할까? 동양화에는 여백이라는 개념이 뚜렷이 있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한다. 산수화에 굳이 물이 없이 산(山)만 있어도 산속을 흐르는 계곡물을 연상하는 것이다. 여백이 주는 매력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서양화에는 여백의 개념이 없다. 빈자리는 공백이고, 비어 있는 곳으로 치부한다 했듯이 그러므로 서양화에는 모든 화폭을 다 채워야 그림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피카소의 그림도 그렇고, 고흐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여백과 공백은 워딩에서도 다르다. 공백은 말 그대로 빈 공간이지만 여백은 생각할 여지의 자리다. ‘나는 너를 보기만 해도 즐거워’ 혹은 ‘널 볼 수만 있어도 좋아’라고 말하는 것도 좋지만 ‘널 볼수만 있어도’처럼 표현하면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워딩이 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시간이 지나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칼과 창으로 싸우고 그 후에는 총과 대포로 싸웠지만 지금은 생각으로 싸운다. 생각은 그러나 상상력이 없으면 약한 무기가 된다. 상상력이 개인의 힘인 것은 물론, 기업이나 국가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상상력은 지성의 창조적인 능력이고, 창조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므로 사람들은 상상이 잠재된 드라마나 영화, 음악, 글 등을 좋아할 것이다. 모든 걸 다 말해 주는 워딩보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워딩이 마음을 끌 것이다. 마치 밥을 다 먹은 것보다 조금 덜 먹었을 때가 더 맛있듯이, 여백이 있으면 상상의 맛은 높아 질 것이라 하겠다. 할 말을 다 말로 하지않고 생각의 여지를 통해 여운을 남겨줄 수 있다면 두고두고 읽히는 글이 될것이라 하겠다.

월남전참전고엽제전우회 거창군지회장 박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