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단종 애사 (조선조 第六代王)
작성일: 2013-10-17
단종은 세종대왕의 종손이요 제5대王 문종과 왕후 權씨의 소생으로 1441년7월23일生이다. 어머님은 출산후유증으로 곧 타계를 하시곤 아버님은 제위2년만에 승하를 하시면서 아우 수양대군께도, 重臣들 황보인, 김종서께도 단종보필을 당부했지만 세조 간신들에 重臣들은 피살되는 불운을 겪었다. 고로 12세 어린 단종이 6대王에 등극하나 숙부는 호시탐탐 왕위를 노려 조카를 사냥터로 데리고 다니면서 호감을 주곤 기회를 엿보다 제위3년째 왕위를 찬탈, 고로 단종은 강원도 영월 첩첩산중 청령포로 중추원사 魚득해 휘하 포졸 50명에 이끌려 왕비며 절신들 통곡 속 경복궁을 떠나게 되었다. 청령포는 3면이 江이요 서쪽만은 암벽이라 탈출이 불가능한 생지옥 孤島같아 釜中魚신세가 되었다. 단종은 적막강산 주야로 짐승들 울음소리가 마치 아내의 통곡소리 같아 슬플때 마다 청령포 솔밭속 떨어지면 못산다는 連理枝같은 쌍소나무에 걸터앉아 화려했던 궁정생활을 회억하며 탄식했다니 단종의 슬픈 기색을 보곤(觀)울음소리도(音)들었다 하여 觀音松이라 칭하며 수령600년이 된 국보수 제349호란다. 필자가 500년전 타임머신을 타곤 단종과 교감하며 청령포를 둘러보니 비통한 마음 그지없다. 美童17세 왕으로서의 경복궁생활도 한바탕 꿈 남가일몽이였고 君弱臣强이라 힘센 간신들 정인지, 한명희, 권람 등의 강요에 왕좌를 내놓곤 혈혈단신 유배지서 애간장만 태웠다니 오호통재라! 왕위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성삼문, 박팽년 사육신등과 김시습, 원호 생육신들의 호위며 세종께선 무등을 태워 궁정을 거닐던 추억, 아바마마의 인자한 모습, 특히 순정왕후 宋씨의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저 청령포 푸른 물결 위 음파에 떠다녀 필자도 시공을 초월하여 듣나니 비감토다. “원통한새한마리궁중서쫓겨나니(一自冤禽出帝宮)밤은깊어잠은오질않고(假眠夜夜眠無假)새벽산새우는소리에달빛은멎고(聲斷曉岑殘月白)하늘도귀먹어내슬픈소릴듣지못하네(天聾尙未聞哀訴)”단종의 자규詩는 구구절절 애를 끊는다.
1457년 유배된 그해여름 단종은 홍수로 강물이 불어나자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겨와 사는데 그때 금부도사 王방연은 세조가 내린 사약을 가져와 단종께 먹이니 곧바로 절명, 그때가 1457년 10.24일이라는 안내원 설명에 필자는 내뛰기 잘하는 一言居士라“가이드 양반, 단종이 죽은달은 12월이고요 독배를 마시곤 발버둥을 치자 방문에 대못질을 하곤 부엌에다 불을 지펴 마치 독일 나치군 통구이 Holocaust처럼 태워죽였다는데요”하니“그것참 처음 듣는 소리요”하자, 옆에선 문암우 교장왈“이분이 요래도 居昌선 愼박사로 통하오”하며 응수를 했다.
강원도 영월은 오지로 궁핍한 땅이지만 “단종”이 먹여 살린단다.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단종의 능과 이조때부터 풍우로 시달린 600년 된 老松, 왕비의 분신같은 산야 막돌을 주워 쌓았다는 망향탑도 500년 풍마우세에 굳건하고 단종이 사약을 받곤 붕어 하시던 날 시녀들도 東江절벽서 몸을 날렸다는 낙화암도 있어 영월은 조선조 비극적 역사가 집약된 곳이라 년중 관광객이 들끓고 금번 거창문화원주최 순례지로선 참 잘 택했다고 우리鄭주환 원장님께 찬사를 보냅시다. 필자는 충북 단양서 내려 일곱차 버스에 탄 300여 동료들께 안녕을 빌며 나는 上京을 했다. 단종에 관한한 비극적 무대를 더 보고 싶어서다. 서울 청계천8가 고층 빌딩 속 냇가를 따라 걸으면 단종이 순정왕후와 섬섬옥수를 맞잡곤 통곡하며 헤어졌던 영도교도 보고싶고 가난에 쪼달린 왕비가 채소장사를 했다는 中國관우 사당 앞“女人市場”도 거닐며 어렵던 조선시대 우리들 어머님 삶을 추억하고 싶어서다. 또 동묘역 앞 고물전서 범종을 사와 三十三天(4방×8방+중앙1)하늘로 둥둥둥.. 목탁으로 범종을 쳐선 오탁악세에 빠진 백성들께 문종성 단번뇌(聞鐘聲 斷煩惱)라 종소리를 듣곤 번뇌 끊게 하고 또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 말 타고 잘 나가시는 朴통께 채찍질 해대는 反美친북 미친 정객들께도 목탁으로 뒤통수를 쳐선 정신병을 확 고쳐주고 싶어서다. 종파만인수(鐘罷萬人愁)라! 종소리는 만인의 수심과 악심을 그치게 한다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