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명 분

작성일: 2004-10-18

겸허와 명분에 있어 한국인은 인격형성 가운데 자신을 어리석고 우둔하게 낮추는 성향이 있다. 이는 치우(癡愚/얼간박약)에 가치를 두는 선비의 조건이었다.
자기를 말할 때 소생(小生)·우생(迂生)·불민(不敏)·불초(不肖)라하고, 남의 아내를 부를 때는 영부인(令夫人)·영규(令閨)·어부인(御夫人)이라고 존대하면서, 자기아내를 말할 때는 우처(愚妻)·산처(山妻)·과처(寡妻)라고 비하했다. 남의 자식 또한 영식(令息)·영애(令愛)·용손(龍孫)·봉손(鳳孫)이라 존대했고, 제 자식은 우식(憂息)·우녀(愚女)·돈아(豚兒)·견자(犬子)라 비하했다.
또 남의 형제는 영형(令兄)·덕형(德兄)·옥곤(玉昆)·귀자(貴姉)·영매(令妹)로 존대하면서, 제 형제는 우형(愚兄)·우제(愚弟)·0우매(愚妹)라 비하한다.
지봉유설에 임진년 왜란에 양가집 규수가 왜적을 만나 도망가다가 가족을 잃은 채 숲 속에 숨어있었다. 마침 늙은 중이 지나가다가 그 처녀를 보니 여러 날 굶어 죽게 되었다.
중은 몹시 불상해서 절로 데려가서 살리려 했으나 처녀는 완강히 거절하였다. 중은 하는 수 없이 절로 돌아와 밥을 지어와서 먹기를 권했으나 처녀는 끝내 먹으려 하지 않았다. 중은 어쩔 수 없이 밥을 곁에 놓고 갔다가 몇 일 후에 와보니 밥은 그대로 있고 처녀는 죽어 있었다.
이에 지봉은『그 처녀가 양가집 자녀로서 정결의 의미를 지켜 죽음에 이르러서도 구차한 짓은 하지 않으니 이야말로 보통여자로서 하지 못할 일이다』라고 양가집 처녀답게 ‘分’을 지킨 것을 극찬하고 있다.
신분이나 가문의 이름에 대한 의리는 선비나 양반사회의 생존조건 이었다. 그에 대한 ‘分’을 지킬 양이면 죽거나 죽지 않으면 그 명분에 연대책임을 진 사람들이 모의하여 무자비하게 죽이기를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名分 非情史라 하겠다.
또 선비는 실리에 얽힌 세상사에 우둔하더라도 옛 선비사회에서는 흠이 되거나 흉이 아니었다. 그만큼 실리와 무관했었다는 것은 명분에 집착한 것이 명예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래서 청빈하지 않으면 선비가 아니라는 정의도 명분에 실리를 희생하는 사고방식에서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일찍이 우리 선조는 대인관계에 자기나 집안을 낮추어 겸손과 명분으로 일관했다. 지봉의 글에서 보듯 체면이나 명분에 목숨을 걸었다. 간밤에 ‘장터소리’라 하여 군수 입후보상대자를 음해 하는 흑색 비방 전단을 유령단체 명으로 살포하여 양식 있는 사람이나 시민단체에서 비판의 소리가 높다. 선관위감시단과 수사기관이 좌시 방관해서는 안되고, 자신을 낮출 줄도, 명분도 모르고, 과욕이 앞서 선거 판을 흐린, 제 얼굴에 똥칠한 영양가 없는 후보자를 색출 엄중 규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