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관광버스 車中음주가무는 안돼
작성일: 2014-01-23
기초질서란 일상생활에서 흔히 예사로 범하기 쉬운 경미한 법익(法益)의 침해 행위로서 경범죄 처벌법과 도로교통법에 그 행위유형들이 규정돼 있다.
관광버스 내서음주가무 시엔 운전자 벌칙금\100,000만원과 벌점40점에 면허정지40일, 승객 또한\100,0000 이하의 벌금이나 구금이 된단다. 기사가 음주운행 시엔\3,000,000 만원의 범칙금과 혈중알콜수치가 0,103%이면 대형1종 면허 취소에 해당된단다.
재론하면 기초질서는 문화국민의 척도이며 그 나라의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되는 요소라는 것을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실천 되지 않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침이나 껌 뱉기, 밤배꽁초 버리기, 찻길무단횡단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질서는 단속을 피하기위해서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한 배려도 아니며, 우리 모두의 안녕과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규범이라. 국민들이 스스로호응하지 않을 땐 말짱 도로무익이 되기에 더욱 한심하다.
그 나라의 높아진 국민적위상과 국격(國格)을 가일층 높이자면 법질서를 잘 지키는 “선진 한국시민”이미지를 스스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난 여지 것 관광버스를 타곤 술을 먹고 앉은 채 노래 한곡 부른 적은 있으되 막춤은 추어본경험이 없다. 그것이 대형사고로 돌변 했을 땐 돌이킬 수없는 후회와 무서운 상황을 군대 운전교육대 교관출신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무가내 나라인 중국에서도 관광버스 안에선 가이드가 앉아서 안내 방송을 할뿐 안전사고를 피하기 위해 서서는 못하도록 법으로 금하고 있었다.
수 일전에 거창하게 노래하는 농부합창단이 KBS방송국에서 주최하는 “더 하모니”에 출전하였다. 가위 전문가 수준의 질 높은 대회라 그런 큰 무대에 서본 것조차 내겐 일생일대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귀향길에 차중 음주가무를 하자기에 선배로서 단호히 반대를 했다. 늙어 힘이 없어서 그러느니 하며 비아냥거리면서, 그러면 다수결로 결정하자고 했다. 참으로 딱한 것이 불법행위를 저지르기 위해 다수결 결정은 언어도단(言語道斷) 아니겠는가?
여러 단원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강력하게 반대하길 잘한 것이 응급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뛰고 구르는 동안 환자가 혼수상태로 이어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엔 배번 출전 시 마다 면사무소에서 담당자와 부면장, 자치위원회위원장과 위원들, 이장 단과 농민회 등 인사들이 동행 ‘올코트 프레싱’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었다. 단장이 바뀌는 과정에 유능한 리더인 지휘자를 바꾸라는 둥의 결과인지 그 후 왠지 보이지 않는 찬바람이 불어 거리감을 의식했었다. 무슨 연유에선가 자초지종을 캐 보아야 하겠지만, 누구든 공적소임에 사감을 들이 대었다면 버려야 할 터인즉, 초심을 버리지 말고 매진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만약에 「돌아오는 관광버스에서 고성방가 뛰고 굴리는 동안 「인사사고」가 났더라면 “근무태만” 비협조 등 속된말로 관계자는 개피 박을 쓸 번했는데, 아무튼 운 좋았다고나 할까! 대국적인 견지에서 쪼잔 하고 더티(dirty) 한 그런 행위는 옳지 않아 근절시정 되어야 한다.
r200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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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구현 ‘사맛디’로 살아가세”
사맛디는 통하지라는 말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원리처럼 ‘나랏말싸미 듕국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로는 그 뜻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종대왕은 늘 백성들의 마음에 사맛디(소통하지)아니하는 글자의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오늘의 스토리텔링의 보고가 이상적인 소통의 의미를 지니지 아니한가 말일세...
‘옛날 방한암 스님이 오대산으로 들어가며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 지언정, 삼촌(三春 춘삼월)의 말 잘하는 앵무새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는 스님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침묵이 흔히 우리가 들은 금(金)이고 학(鶴)이라 한다면 표현은 되도록 안하는 편이 낫다는 의미인데 나아가 아예 앵무새 재주를 거부한 건 도인의 길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방한암 스님은 이 말을 한 뒤 27년간 입적(임종)할 때까지 산문(도량처) 밖을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표현 없는 세상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소통이란 서로 마주보고 오고가는 것이다. 말이 안통하면 소통이 불통이 될 것이다.
노총각들이 장가를 못가 조선족이나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외국 처녀들과 결혼한 가정이 많지만 이들은 말의 소통이 잘 안된다.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의사소통이 안 되면 참으로 답답하고 꽉 막힌 죽음의 터널에 갇힌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들에게 오작교의 언어소통이 제일의 관건 일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기도 하지만 우리 서서로가 이들의 입장을 잘 알고 보듬어 주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의 언어 글로벌화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는 지하철 소음과도 같이 어렴풋이나마 들리기에 참아 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설사 말은 통한다 할지라도 진심이 통하지 않는 고통은 죽기보다도 더 힘들 것이라 하겠다. 말이 소통(疏通)되는 것과 불통(不通)되는 것은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끊어지는 말은 짧은 희망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람사이를 화통(話通)으로 화끈하게 접속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민주사회에서는 세계시민의 자질을 드높이는 의사전달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한마디로 ‘생기 있는 화술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요 향기’라 할 수 있으니 상대방과 자신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효율적인 의사표현 방법, 창조하는 언어 능력 교육은 현대인의 필수기법이라 하겠다.
자기표현술은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줌으로서 우선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하게하고 당신의 능력을 최대한 드러내는 자기대화능력이라고 하겠다.
인간은 정신이 건강해 질려면 대화를 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신건강은 건전한 말속에 깃든다는 뜻이다. 오늘날 너무나 말이 피폐해가고 인정이 매말라 가고 고사목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바로 죽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가는 말을 하지 않고는 삶을 꾸려 갈수가 없을 것이다.
언어는 상대성이며 상대가 없으면 이루어 질수가 없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특이성이 있다 하겠다. 건강한 육체 속에 건전한 정신이 있다. 그렇다 몸이 건강해 지려면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매일 매일 운동을 하고 보약을 먹으며 영양식으로 보충을 하기도 한다. 요즘 웰빙(참살이) 바람이 불어서 온통 난리 법석을 떨고 있는 이유도 이런 연유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건강은 건강한 육체도 해당됩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의 건강이 아닌가 말입니다.
청마의 해 갑오년 새해에는 만사화통(萬事話通) 에너지가 솟아나 물 흐르듯이 소통이 잘 되는 밝은 사회가 되길 학수고대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