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吉祥)
작성일: 2014-03-27
명심보감에 득인일어승천금 (得人日語勝千金)이라 하여 훌륭한 말한 마디를 듣는 것이 천금보다 귀하다했고 선언화우포백(善言火爰布帛)이라, 좋은 말은 비단옷을 입히는 것 보다 따뜻하다고 하듯 남의 좋은 점은 적극 받아들이란 말로서 좋은 결과가 일어날 것만 같아서 길상과 통하는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통째로 삼킬 것이 아니라 맛을 보고 씹어보면서 구미에 맞고, 능히 소화 할 수 있는 것만 택해서 받아들이란 말씀을 정치지망생을 향해 귀뜸 해주고 싶다.
길상에서 숫자로 보면 아홉수가 최대 최고 완결의 숫자로 자리매김 했으니, 흔히들 바둑이나 정치판에선 9단을 최고상수로 치고, 가장 크고 좋은 집은 아흔아홉 칸 집이요, 生日은 인생이 자라는 마디이고 걸어가는 길상의 이정(里程)의 단위라고 말 할 수 있다.
길상에서 지식은 졸졸 흐르는 실오리 같은 냇물이라고 하면 학문은 냇물이 졸졸 흘러 모인 크고 깊은 호수와 같아 같은 물이라 할 터, 냇물이이나 호수가 진배없지만 그 모양새나 크기나 깊이에선 확연이 상서로운 점이 구별이 된다.
같은 이치로 길상이란 학문에서의 “앎”이라는 점에서는 학문과 지식 또한 다를 바 없지만, 그 폭이나 깊이에선 엄연히 구별되게 되어 있지만 이러한 구별을 도외시 한 채 얄팍하고 겉도는 지식을 길상으로 둔갑시키고 오만을 부리며 학문의 엄함과 깊음을 무시해선 안 된다.
예수님이 다섯 광주리 빵을 5천명에게 나누어드리고 그러고도 열 두 바구니에 빵이 가득 남아있다고 하는 기적은 사랑에 의해 “부”가 사용됐을 때, 무한공급의 “부의 본원”을 통해서 넘치게 부가 베풀어지는 것을 실증하는 길상이라 하겠다.
물질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내면에 있는 “신의 사랑”을 예배하고 존중하는 의미에서, 예수는 아무리 적은 빵조각도 그것을 주워 모으고 있을 때 열두 바구니에 가득히 빵이 남아있는 것이다. “베푼다” 고 하는 “사랑”의 실천과 물질의 내면에 있는 “신의 사랑”의 예배 존중에 의해, 베풀어진 부 이상으로 吉祥의 무한의 부가 또 베풀어지게 되는 것이리라.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란 격조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한다는 말로 이는 부와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여 진다.
백년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칼레시‘의 귀족들이 패전 책임을 지기위해 앞 다퉈 목숨을 내어 놓았고, 로마 귀족들은 솔선수범하여 전장으로 뛰어 들었다고 한다.
사회적 기부도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한 축이다. 로마의 귀족들은 자신의 돈으로 공공시설을 하기 다반사였고, 철강 왕 카네기는 평생 사회봉사 활동을 이어갔다.
지금 한창선거철이다. 권력은 누가 준 것이며, 재산형성은 누가 가능케 한 것일까를 깡그리 잊은 철새들을 대하기가거북하다. 난, 부면 富, 재능이면 才能, 가진 것 전부를 죽기 전에 사회에 되돌려 놓기로 진작 에 작정 실행에 옮기고 있다. 同行者가 많았으면 하는 기대와 吉祥의 상서로운 祥자는 사슴뿔을 상징한 글자다. 사슴은 풀만 먹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이로운 짐승이기에 왠지 吉祥의 조짐이 보이는 듯하다.
임부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