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봉사하기도 어렵네!

작성일: 2014-04-09

봉사(奉仕)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사회단체 또는 남을 위하여 일신의 영달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애 씀인데, 난 평생 음지에서 일관되게 그 일에 삶을 영위하고 있다.
언제쯤 이었던가? 아마 20년 전 일인 것 같은데, 노모님을 봉양코자 고향에 돌아와 생활에 재미를 붙여 가던 중 동네에 젊은이가 적어서 지방행정기관 최 말단 동리 이장 직을 할 사람이 마땅찮다는 것이다. 그럼 제가 하면 되겠느냐고 손을 번쩍 든 적이 엊그제 일만 같다.
그 즈음 혁명정부 시 내무부장관과 서울시장을 지낸 김현옥 씨 게서 경상남도 기장군 장안면의 한 중학교 교장 직을 하면서 어릴 적 꿈이 소학교 선생님이었기에 마지막 생을 학교를 잘 운영하고 나선, “행정기관 내부부의 최 말단 이장 직을 해서 살기 좋고 멋진 이상적인 동네를 꾸미고 싶은 게 꿈이라면 꿈”이라고 언론에 회자 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왜정시대에 소학교 소사를 하면서 일본인 선생님이 너무나 부러웠는데 이제 소시적 꿈을 이루었으니깐 여한이 없다고 해 감동을 주기도 했었다.
일전 출근길에 광고사 차가 와선 현수막을 높이 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 퇴근길에 본즉 주민자치위원을 공모하는 광고 이었다. “2월27일부터 3월9일” 마감 10일간인데 현수막은 3월6-7양일간만 걸린 것으로 기억되고, 8일은 토요일 9일은 일요일 양일 휴일까지 4일을 걸었다 그렇다고 치자 노는 짓거리가 꼼수를 쓰는 모종의 썸씽(Something)이 있는 것 같은 냄새를 풍겼다.
북상면사무소 담당자에게 전화상으로 전언하길 ‘2일간을 늘려야 마땅한 처사’가 아니냐고 물어보곤 휴일이지만 근무자가 있어서 지원서를 제출하게 됐다. 가부간 결과는 집으로 서면 통지해준다는 답변을 했는데, 한데 여지 것 서면 통지는 없다.
수개월 전 북상면 자치위원장이 예산은 없는데, 서울에 잘 아는 설계사무소에 부탁하여 안심마을 공모에 응모 할 서류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아 하루 걸려 어렵사리 실행에 옮겼는데, 이모 면장과 의견조율이 잘 안되었음인지, 흐지부지 말이 없어 난 실없는 사람만 되었다. 어쩜 나의 경력과 재능을 봉사할 자리도 있구나 싶어 문득 김현옥 시장을 상기 롤 모델(Role model)삼아 사심 없이 지원을 하게 되었다. 수개월 전의 응모서류부탁 건에 대하 연 자치위원장은 여지 것 일언반구도 하질 않았다.
자치위원 선정은 면장권한인가, 자치위원장 재량인지는 모르겠으나, 부결을 시킬 양이면 망신을 줄 것이 아니라, 적절한 설명을 곁들여 지원서를 반려 했어야 옳았다.
굳이 말하자면 난 허퍼(huffer) 선출직 감투나 써 볼까? 하는 마음을 먹어 본적이 없다. 실토하면 난 가진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그간 토지를 100여건 거창군에 기부하였고, 다소의 금품, 골동품 등을 사회에 내어 놓았으며, 나의 가진 것 전부를 죽기 전에 내 무덤 한 평도 남기지 않고 사회에 되돌려 놓기로 작정 실행하고 있는지가 오래다. 그런 맥락에서 노인정 설계도를 그려다 준 적이 있었고, 나이 들어 향리에 가진 능력내지는 노하우(Know-how)를 노력봉사 하려던 일이 무산되어 里長이나 自治委員 조차 하다못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하는 가보다 싶어 아이러닉 했다.
결격사유가 뭘까 서면으로 답변을 받아 적절한 대처를 해야겠다는 것이 지금의 심경이다. 지적하면 유태교 탈무드에선 다수결은 없다. 악법을 다수결로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취지인 것 같음을 알려주노라.

임부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