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등신 되는 삶
작성일: 2014-05-01
등신(等神)의 사전적 의미는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란다. 그런 등신 같은 삶을 살기로 작정한 나의 자화상을(自畵像)그려보면 원래 좀 팔푼 같이 어수룩한데다가 말도 어눌하고, 글씨가 좀 악필로 보도(Bolt)가 약간 풀린 머저린 만화경(萬華鏡)같이 재미있는 그림으로 묘사되지 않을까 싶다. 명문가 葛川 후예이나 선대가 독립운동을 한 탓에 초년고생을 면할 순 없었던 터라 당시론 남이 안가는 대학도 다녔고, 운수대통 하여 대기업에 종사, 돈도 잘 벌어 세상물정 모르곤 잘 먹고 잘 쓰면서 살기도 했다.
이만여 사원 중 이 ‘등신’이 사원들 간에 인구회자 되길 “해결사”란 명망(名望)있는 닉네임이 붙어 다녔다. 본연의 임무를 제쳐두곤 타부서의 청탁을 들어주기에 바쁜, 어리 숙한 삶을 살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귀때기 새파란 청장년(靑壯年)기를 우쭐대며 내가 잘난 사람인줄 착각 속에 살았던 것 같다.
“해결사”는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 는 말처럼 단칼에 비벼버려, 건수(件數)가 고문 변호사 손에 넘어가기 전에 일사천리로 마무리 짓는 소방수 역할이라 하겠다. 환언하면 돈이면 돈, 주먹이면 주먹, 잡다한 크고 작은 일을 닥치는 대로 신속하게 처리를 했지만, 결단코 국익을 해치는 일은 하질 않았다.
진작 에 내 뒤엔 “현대그룹”이란 거대한 간판과 고“정주영”씨란 큰 바위 얼굴이 버티고 있었음을 그 땐 미처 몰랐었다. 경상도 말씨에, 적당하게 말을 더듬고, 글씨는 악필이여서, 상대가 몰랑몰랑 하게 얕잡아 볼 조건은 다 갖추었기에, 반칙안할 사람으로 믿음이 간 만사형통 형이, 해결의 첩경이 아니었을까? 지난 일을 회고하건데 ‘잘났음’이 아닌 ‘못났음’을 자인하며 애당초 크게 될 싹수가 노란 보잘 것 없는 사람인 것을 이제 사 깨달곤 얼굴을 붉힌다.
낙향(落鄕)한지 근 20여년을 바보 등신같이 살기로 공부 아닌 연습을 하길 철저히 낮은 자세로 몸을 낮추고 살아온 지 오랜 지금에 사 충분필요 조건이란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배운 대로 古稀를 넘긴 지금도 나이 十餘歲 어린 사람들이 “해라”하며 낮춤말 버릇으로 대할 지라도, 난 등신이려니, 깍듯이 애나 어른이나 존대 말로 응대해 주곤 한다.
엇 그제 부산에 모임이 있어 다녀왔다. 전직 장관 모씨가 사담 중에 평소 자기신경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엉거주춤 몹시 성가시다고 하셨다. 누가 답하길 똑같이 대해주질 말고 철저히 무시해 가만히 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여기서 한 수 배워 자전적 애길 함은 나 역시 사람을 물로 보곤 단체 일에 건건이 간섭을 해 곤욕을 치르길 3여년 참음의 한계에 도달 폭발직전인데 그 순간 뇌리를 스친 직감이「아! 이젠 바보등신이 되었구나!」란 생각이 들자 독한 빼주가 물맛이었다.
똥인지 된장인지를 찍어 먹어 봐야 맛을 알까? 허접스런 속물근성 버릇을 고쳐줄까 작정했건만. 세상만사엔 까탈스런 마가 낄 수 있다 싶던 참에, 어느 똑 바른 후배가 형님! ‘참 나’를 깨친 “等神은 하느님과 동격” 이라고 하질 않소! 란 말을 해 소박한 난 무릎을 치며, 『이제 정말 등신이 되었다!』 란 생각에 실소(失笑)를 금할 길 없었다.
개(犬)는 잘 짓는다고 좋은 개가 아니고. <莊子> 말 잘한다고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행동을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다. <寶鑑>
-붓가는대로 임부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