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앞으론 반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작성일: 2014-09-25

과장하고 자랑하는 것보다 낮추어 말하는 것이 가장 큰 광고 효과를 유발할 때도 있다 하겠다.
사람들은 겸손한 말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라고 함은,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것임은 다 알겠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반도’라는 말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필자는 젊은 한 친구한테 물었더니 나라가 반으로 나뉘어서 그렇다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반도(半島)는 말 그대로 반이 섬이라는 말이다. 하기야 우리는 남북한이 반 토막 나서 비행기나 배가 아니고는 다른 나라로 갈 수 없는 섬과 다름이 없다.
한반도의 ‘반’과 마찬가지로 ‘반말’이란 말은 완전히 존대어가 아니라 반(半)으로 낮춘 말이라는 뜻이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반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쁜 것은 귀정사실이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전에는 관공서나 경찰서 등에서 민원인들에게 반말 어투를 하는 것이 드물지 않았다.
지금도 반말을 쓰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도 반말투를 즐겨 쓰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아이들이 아버지에게는 존대어를 하면서 어머니에게는 반말을 하는 것은 대부분 아버지 탓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반말을 하면 어릴 적부터 그걸 본 아이들은 어머니한테는 당연히 반말을 써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아이들 앞에서는 존대어를 써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아이들이 어머니를 어렵게 생각하고 존중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일본의 어머니들이 아들과 딸에게도 꼬박꼬박 존대어를 쓰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뭐 꼭 이것이 완벽하게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배울 점이 많다하겠다.
일전에 어느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존대어를 쓰자는 캠페인을 펼쳐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를 좀 더 좋은 쪽으로 전환시키는 방법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 지방신문에서 아주 작은 광고 하나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자동차 학원은 대부분 높은 합격률, 탁월한 시설 등을 강조 할 것인데 이 학원은 딱 한 줄로 아주 성공적인 차별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저희는 반말을 하지 않습니다.’ 시설이나 합격률 같은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한 줄이 가슴에 와 닿았다. 가슴에! 괜히 그 학원이 좋아졌다. 그곳에서는 불친절하고 적당히 반말하는 운전 강사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왠지 합격률도 높을 것 같았고, 교습용 차도 좋을 것 같았다.
이런 운전학원이라면 좀 멀더라도 어떠 하겠냐 말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코미디언 이주일이 유행시킨 유머 중 이런 말을 기억하는가?
‘못생겨서 미안 죄송합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겸손한 표현인가 말이다.
사람은 자랑을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그리고 남이 자랑하면 그것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한다.
우리 속담에도 겸손을 권장하는 조신하라는 것들이 많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라는 말은 생각이 많고 학식이 많은 사람일수록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다는 뜻이다. ‘까마귀가 메밀을 마다한다’라는 것도 있는데 ‘메밀을 좋아하는 까마귀가 메밀을 마다한다’ 라는 것도 있는데 메밀을 좋아하는 까마귀가 메밀을 멀리하는 것은 평소에 즐겨하는 것을 사양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은 겸손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남들이 나에게 겸손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아니 저 인간이 왜 저렇게 겸손한 거야? 이런 생각으로 상대방을 앝잡아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스스로 부족한 인간성을 가진 것이니 무시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이 겸손하면 오히려 호감을 갖게 될 것이다.
호감을 갖는다는 것은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수용한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떠들어도 상대방이 마음을 닫고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는가 말이다. 한 발 물러나 겸손의 표현을 찾을 때 공감의 장은 분명 열리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출 때 더욱 성숙해지는 관계처럼.....

-대한민국 월남전참전 거창군지회 회장 박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