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국역사는 동이족이 일군 역사

작성일: 2014-11-20


동이족은 치우천황의 영토 확장을 계기로 서토(西土)깊숙히 퍼져나가 중국의 역대 왕조를 이끈 주류가 되었다. 대만과 중국학자들 스스로 “중국은 동이 문화”라고 말할 정도이다.
중국역사의 시조인 황제헌원부터 동방배달의 한 종족이란다. 『사기』「오재본기」에서 헌원의 종족이름을 유웅(有熊)이라 하였는데, 유웅씨는 배달 초기에 흡수된 웅족 계열이다. 그 뒤를 이은 고대3왕조의 개국조인 하나라 우(禹), 상(은)나라 탕(湯), 주나라 문왕과 무왕까지도 모두 동이족 혈통이다. 특히 상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로 제도와 풍습이 당시 그들의 상국(上國)이던 단군조선과 아주 흡사하다. 그리고 주나라 초기에 강태공이 제후로 봉해진 제나라도, 그 이웃인 노나라도 역시 동이의 나라였다.
동이는 중국의 역대 왕조를 일구었을 뿐만 아니라 신교문화와 문물을 중국 땅에 전했다. 동이의 도자기 제조술, 제철법, 역법(曆法), 갑골문자, 천자(天子)제도, 조세제도, 윤리규범 등 다양한 문물제도가 전해졌다. 동이족은 지금의 산동성, 하북성, 하남성, 안휘성, 호북성, 절강성 등 광대한 영역에 걸쳐 활동하면서 중국 황하문명의 근간을 이루었다.
한마디로 ‘ 배달 동이’는 중국에게 지배를 받은 민족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문명 발전을 주도한 지배세력이었다.
환국과 배달의 역사를 밝힌 홍산문화. 동북아의 인류의 창세사를 다시 써야 한다. 동북아의 역사는 참으로 오랫동안 왜곡되어 왔다. 이 왜곡된 한민족 뿌리역사의 진실이 중국의 홍산문화의 유적발굴을 통해 송두리째 들어났다.
세계를 놀라게 한 무려 9천년 이상 된 고대문명의 출현은 20세기 고고학 최대의 발굴사건 이었다. 일본학자들이 발굴에 참여하다가 1937년 중일전쟁 홍산유적은 한동안 잊히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 일원으로 일본식민사학자 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해방 후 국사학계를 주도했던 이병도(李丙燾)는 만년에 단군조선을 인정함은 물론 그 전의 환국과 신시 배달도 실존역사로 인정하였다.
33세 단군 감물재위24년.
재위 7년 무자(단기 1521년, BCE 813년)년에 영고탑 서문밖 감물산(甘勿山) 아래에 삼성사(三聖祠)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드렸는데, 그 서고문(誓告文)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분성조(환인, 환운, 단군)의 높고도 존귀하심은 삼신과 더불어 공덕이 깊으시고 삼신(上帝님)의 덕은 세분 성조로 말미암아 더욱 성대 하시 도다. 텅빔(무)과 현상(위)은 한몸이요(虛粗同體) 낱낱〔個〕과 전체〔全〕는 하나이니〔個全一如〕지헤와 삶 함께 닦아〔智生雙修〕내몸과 영혼 함께 뻗어나가〔形괴 俱衍〕참된 가르침이 이에 세워져 믿음이 오래면 스스로 밝아지리라.
삼신의 힘을 타면 존귀해 지나니 빛을 돌려 내 몸을 살펴보세.
저 높고 가파른 백악산 만고에 변함없이 푸르구나.
역대성조께서 대를 이어 예악을 찬란히 부흥시키셨으니
그 규모 이토록 위대하여 신교의 도술 깊고도 광대하여라.
하나(一氣)속에 셋(삼신)이 깃들어 있고〔執一含三], 세 손길로 작용하는 삼신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나니〔會三歸一],
하늘의 계율 널리 펴서 영세토록 법으로 삼으리. <환단고기>로 미루어 짐작컨대 중국의 역사는 동이족이 일군 역사이거늘〰〰〰

붓가는 대로 임부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