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나폴레옹의 모자
작성일: 2014-11-27
모자란 한서를 피하려는 용도외 계급사회선 권위와 신분을 상징하는 왕관이나 판사들이 쓰는 해태관,예수님께 쒸운 가시면류관, 승자가 쓰는 월계관, 중동인들이 써는 트반, 병정들의 철모 등이 있지만 조선인들은 의장용 모자가 4천종이나 된다면서 유럽의 여행가 앙뢰갈리씨가 조선을 와보곤 깜짝 놀랐다고 한다. 즉 왕이 쓴다는 금관 및 매미 날개 익선관에서부터 궁중 귀부인들의 수달피 모자와 아기들의 고깔모자, 평민들의 중절모, 갈모, 굴건, 승관, 두건, 족두리, 벙거지 외 갓은 사계절 전천후 눈비나 햇볕까지 막아준다니 세계서도 유일한 다용도 모자란다. 금번 하림식품 사장이 어릴적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그걸 바탕으로 지금은 년간 4조원 매출을 올리는 식품회사로 발전하여 “불가능이란 없다”는 도전정신에 부합된다고 나폴레옹 모자를 사와 화제다. 원래 경매가가 7억이었으나 일본인과의 경합에 26억에 낙찰을 받자 유럽경매장서도 깜짝 놀랐단다. 나폴레옹 모자가 현재 19개가 있어나 17개는 박물관 소장이며 2개는 모나코황실이 소유하고 있으며 그 중 한개를 매도 왕실보수비용으로 썬다는 것! 나폴레옹 모자의 특징이 박쥐가 두 날개를 펴선 하강 뭣이든 잡아먹겠다는 실루엣을 연상케 하여 “도전정신과 불가능이 없다”라는 평에 매입한 이유란다. “나폴레옹” 하면 미술교과서엔 백마를 타고 박쥐같은 2각모를 쓰곤 “나에겐 불가능이 없다”라는 기상으로 험준한 알프스산을 넘는 그림으로 유명하지요? 허지만 157cm란 난쟁이 키에 긴 장화를 신고는 모자는 챙이 긴 2각 모자를 썼다는 게 단신을 캄푸라쥬 할려는 뜻에서라나? 나폴레옹은 (1769-1821) 52년 짧은 생애를 통해 40여 차례나 전쟁을 치렀다면 로마 시져와 같은 영웅적 기질이 농후한 장군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서부 코르시카 섬 태생으로 프랑스로 건너와 파리육사를 졸업하곤 포병장교로 임관후 많은 원정에서 승전보를 알렸으나 1805년 트랄팔가 해전에서 영국 넬슨제독의 수병들에 잡혀 엘바섬으로 유배를 당했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영국해병들을 매수 탈출케 하여 다시 파리로 입성 100일천하란 황제칭호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제2차 영국과의 워터루전투에서 잡혀 영국이 탈출방지책으로 대서양의 고도 센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 6년여만에 52세 나이로 병사를 했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가 거금을 드리곤 영국과의 유해송환 협상 끝에 1840년 나폴레옹은 한줌의 재로 백마에 실려 개선문에 들어설 제 파리시민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단다. 파리개선문 앞 12개 방사선 도로는 정복지 이름을 딴 길로서 그곳을 스칠 때는 백마도 슬피 울더라는 후문이다. 2007년 4월 필자가 도불 개선문 위에 올라서선 파리시가를 내려다보면서 나폴레옹을 회억컨대 “어제는 왕 오늘은 무명씨”란 “오조리더매리”(Aujourd'huiroi, demainrien)를 되씹고는 발걸음을 노틀담사원 옆 앵발리드로 옮겨선 가로 세로 1m x 50cm 향나무 관속에 유럽을 주름잡던 용기백배한 나폴레옹을 내려다보니 花無는 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 똑 “당신의 호전성이 북한의 김정은씨 닮았구나”싶어 온몸이 가시 돋친 듯 하여 퍼뜩 에펠탑 밑으로 나오니 반라의 집시들 Can Can 춤에, 샹송에 여독이 확 풀린다. 옆에 파리쟝 한분이 나폴레옹 꼬냑 술 한잔을 주면서 마셔보란다. 필자왈 “왜 포도주에 나폴레옹꼬냑이란 말을 붙이냐”하니 파리짱 왈 1811년 꼬냑 지방서 포도가 대풍을 이루었고 그해 나폴레옹이 아들을 낳은 기념으로 똑 “거창 쌀 막걸리”처럼 포도주산지 명을 썻다면서 한잔을 더 권하길래 캬! 하고 둘러 마시니 세상번뇌가 다 사라져 그 보답으로 내가 술에 관한 영국명언을 한수 가르쳐주니 그저 “매시매시”란다. “술한잔 속엔 세상의 수 많은 책보다 더 많은 철학이 숨어 있다”고 (A bottle of wine contains more philosophy than all the books in the world)
※ 1)필자가 쓴 투구는 나폴레옹 병정들이 쓴 철모임
-논설주간 신중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