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동북아와 인류의 창세사를 다시쓰다

작성일: 2014-11-27

동북아의 역사는 참으로 오랫동안 왜곡되어 왔다. 이 왜곡된 한민족 뿌리 역사의 진실이 중국의 홍산문화유적발굴을 통해 송두째 들어났다.
‘홍산(紅山)’은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산 전체가 적철광으로 뒤덮여 붉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배달시대이래 우리조상들의 황동강역이던 내몽골 지역과 중국 요령성 지역에서 홍산문화의 유적과 유물이 대거 발굴되었다.
홍산 인근에서 나온 5,000〜6,500년 전의 문명은 협의의 홍산문화이고, 만리장성 이북의 요서일대에서 발굴된 최고 9천년 이상 된 고대문명의 출현은 20세기 고고학 최대의 발굴사건이었다.
홍산문화 발굴은 1908년, 일본 학자인 도라이 류조우(鳥居龍藏)가 적봉일대의 지표를 조사하다가 우연히 신석기 유적과 적성총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1937년 중일전쟁으로 홍산유적은 한동안 잊혀 졌다가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1971년 8월, 내몽골자치구 옹우특기에 사는 한 농민이 과수원에서 갈고리 모양의 물건을 발견하고는 녹슨 폐철이라 여기고 집으로 가져갔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녹이 벗겨지며 광택이 나자 옹우특기 문화관에 신고를 했다. 문화관에서도 창고에 넣어둔 채 방치하다가, 10여년이 지난 뒤에 북경대 고고학자 쑤빙치(蘇秉琦)교수에게 보내어 감정한 결과, 5천 년 전에 만들어진 옥기(玉器)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로선 가장 오래된 용유물인 이 “C자형 옥룡”을 중국정부는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이라고 이름 붙였다.(1984년)
유물이 발굴 될 때마다 동북아의 시원역사를 다시 쓰게 하는 홍산문화는 세계4대문명보다 앞선 것으로 ‘제5의문명’ 이다. 환국문명의 자취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 홍산문화는 인류역사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매우 소중한 문화자원이다.
홍산문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3-40년 전의 일이다. 1979년 요령성 객좌현 동산취촌에서 제사유적이 발견되고, 1983년 무렵 인근 우하량촌에서 적석총(赤石冢)돌무지무덤〔塚〕, 신전〔廟〕, 제단〔壇〕유적이 한꺼번에 발글 된 것이 계기기 되었다.
홍산문화의 중심지이자 성지인 우하량 지역의 유적은 계급이 분화된 국가 단계의 고대문명을 보여주는 것으로 더욱 이목을 끌었던 것이다. 대형 적석총을 보면 최고 통치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중앙의 대묘(大墓)를 작은 무덤들이 둘러싼 형태이다. 한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신전은, 최고통치자가 제사장으로 천제를 올려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던 제정일치 시대의 유물임을 말해준다.
이미 6천 년 전에 국가체제를 갖춘 이 문명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우하량유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적석총이 이를 말해준다. 적석총은 고대에서 삼국시대까지 계속 나타나는 한민족의 대표적인 묘제이다. 적석총은 충적층 지대인 황하지역에서 형성된 한족 문화권에서는 전혀 출토되지 않은 무덤이다. 한족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주검이나 관을 묻는 토광묘를 짓는다. 결론적으로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배달동이족인 것이다. -환단고기에서-

붓가는대로 임부륙 r2005@daum. 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