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얼마만큼 청렴결백해야 하나

작성일: 2015-01-15

일상타인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청렴하고 결백해야 하는 가 에 의문점을 가질 때가있다. 내 딴엔 청백리는 아닐지언정 꽤나 청렴하고 정직하게 살았다고 자부를 하는데, 짧지 않은 기간을 부정직하다는 눈총을 받고선 참고 견디자니 맘고생에 지옥이 따로 업 구나 싶었다.
우리말사전에선 “결백은 행동이나 마음씨가 깨끗하여 허물이 없음”이라 했는가 하면, “청렴도는 성품과 행실이 맑고 깨끗하여 재물 따위를 탐하는 마음이 없는 성질이라 풀이를 하고 있다.
나는 불성실하고 부도덕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얼마나 불성실한 것일까를 거푸 자신을 다잡아 三神上帝님께 기도하듯 삼년 여란 기간을 곧추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죽음 앞에서도 순리와 정도를 지킨 조선시대 명재상 채제공의 얘기다. 번암(樊巖)蔡濟恭은 조선시대 명조와 정조대에 활약한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80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실권을 장악한 왕실체제에 대항 정치적 신조와 의리를 지키고 재상의 자리에 올라 개혁정책에 보좌한 명재상이다.
충청도 암행어사 시절 영조가 앞장서서 추진한 균역법의 실시 과정에서 생긴 폐단의 시정과 대책을 전언했다. 도승지에 임명된 후에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악화된 부자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영조가 세자를 폐위하는 명령을 내리자 죽음을 무릅쓰고 막아 이를 철회시켰다. 이 일로 후일 왕세손인 정조에게 ‘진실로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고 너는 충신이다“란 말을 들었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후회하여 기록한 비밀문서인 “금동”은 사도세자의 모친인 ‘정성황후의 神位아래 감춰져 있었는데, 영조와 정조, 채제공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 그를 “세상에서 좀처럼 나기 어려운 뛰어난 인물” 이라는 뜻의 ‘간기인물(間氣人物)’이라고 칭송했다. 번암은 두 왕으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았지만 권력을 남용하는 일이 없이 개혁정치에 충실하게 보좌했다. 권력을 남용한 홍국영에 맞서 정치의 정도를 주장했지만 홍국영이 죽자 단지 그와 친했다는 이유로 정쟁에 휘말려 8년간이나 은거 생활을 했지만 69세 땐 정조의 특명으로 우의정에 오르고, 잇따라 좌의정에 올라 3년간 독상(獨相혼자서 정승을 맡음) 정조의 개혁정치를 성공으로 이끌어내었다. 이런 번암을 정약용은 가장 탁월한 재상으로 존경해 애도시를 남겼다.
‘고금에 유례없는 하늘이 낸 호걸이라/ 이 나라 사직이 그 큰 도량에 매여 있었소/ 뭇 백성의 뜻 억지로 막는 일 전혀 없었고/ 만물을 포용하는 넉넉함이 있었다오…/ 100년 가도 이 세상에 그분 기상 없을 터니/ 이 나라 만백성들 뉘를 기대고 살리오/ 세 조정을 섬기면서 머리 허예진 우뚝한 기상/ 옛일들 생각하니 갓끈에 눈물이 흠뻑.’<번암 채정승 만사>
누가 내게 이르기를 “단지 세 사람만 있어도 먼저 나서선 안 될 위인이라고 했다” 지극히 맞는 말인 것이 “앞장서지 말란 선조유훈이 있기에 진정 그 말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번암 같은 명재상을 모델삼아 심신 추스르기를 반추 한걸음 뒤로 물러서길 실천하련다.


-붓가는대로 임부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