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가는대로>인생등정

작성일: 2004-12-06

나는 소시 적 직장을 버릴까 싶을 정도로 산을 좋아해서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서울의 내노라하는 산꾼들이 모인 C산악회를 이끈 경험으로 산을 좀 안다. 스처가는 인연으로 여행전문가인 한비야도 산을 다니다가 외국의 큰산을 트레킹 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명여류 여행가가 된 것 같다. 그는 배낭을 가볍게 잘 꾸리기로 명이 났는데, 망서려 지는 것은 무조건 빼고, 뭐든 하나씩만 챙기면 그 하나는 엄청 귀하게 여겨진다고 한다. 배낭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관계정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세일즈맨으로 성공하려면 무려 명함이 1000장은 되어야 마당발로 인정받고 성공의 첩경이라 한다. 그러나 소중한 인간관계에 더 충실하려면 명함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마음씀씀이가 더 중요할 것 같다. 그래서 왠지 서먹해 지는 명함일랑 가차없이 빼버리는 것이 득이 될 것 같다. 또 인연 중에는 길연이 있으면 분명 악연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되도록 악연을 피해 좋은 관계를 갖도록 노력해야겠지만, 때론 피치 못할 악연을 만나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대라면 이 또한 미련 없이 빼야한다.
내 인생 등정 晩年 7부 능선에서 감당키 어려운 무거운 짐 세 개를 덜고 홀가분한 심정으로 정상을 향해간다.
하나는 불교 신자인 아내이고, 또 하나는 천주교도인동업자로 맞아들인 후배, 예수를 믿는 죽마고우인 세 사람이다. 이들로 하여금 상처받은 것으로 치자면 장사로서는 본전도 못 건진 망한 장사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지켜본 후의 되돌릴 수 없는 힘든 결정이었기에 무신론자인 내게는 후진기어는 업다. 머리가 샤프하게 돌아가는 아내, 재치와 사교에 유능한 후배, 하늘에 오르려는 죽마고우! 나는 진정 이들을 사랑하고 닮아 죽을 때까지 오래도록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건만!
모두가 위선으로 가득차 남으로부터 빼앗은 것으로 이룬 도심과, 이기성에 더 이상 전염되는 것이 두려워 서슴없이 덜어냈다.
이미지 설계전문가 이종선은 단호하게 말한다. “누군가를 빼려고 망 서려질 때는 자신의 가슴의 소리를 들어보면 안쓰러움이 아닌 묵직한 불쾌감이 든다면 그는 빼고 가는게 낫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요, 나그네에게 물 한 쪽박만 주어도 인연이라 했다. 만리 길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주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있으니”하며 빙긋이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내 인생등정7부 능선에서 뒤돌아본 가슴에 와 닫는 함석헌 님의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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