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猿 鶴 洞

작성일: 2015-08-12

先人게서 이르기를 안의현 삼동 중 원학동은 신선이 산다는 선경이라 하늘아래 첫 동네 단구(丹丘)라 했고, 예전부터 절경이란 무릉도원으로 일컬어 졌다. 기호지방의 학자 오숙(吳䎘1592-1634)선생은 유수송대기(游愁送臺記)에서 덕유산 남쪽에 동천이 있는데 원학동 이라한다. 이곳은 옛날 처사 임훈(林薰)선생이 살았던 곳으로 세상 사람들은 이곳을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부른단다. 맑은 시내와 하얀 반석이 아래위로 10여리나 펼쳐 져 있단다.
이처럼 원학동은 자연경관이 빼어나 예부터 이름나 있기도 하지만 17세기 초에 이미 기호지방에서 까지 무릉도원이란 입소문이 나있었기 때문에 더욱 유명세를 탄 것 같다.
도연명의「도화원기」엔 한 어부가 강물에 떠내려 오는 복사꽃을 따라 상류까지 올라가 작은 동굴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본즉 탁 트인 드넓은 별천지가 펼쳐져 있는 그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토지는 평평하고 집들은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데, 기름진 농토와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 대나무 숲이 있었다. 사통팔방으로 길이 나 있고 닭이 울고 개가 짓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이 마을에서 왕래하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외부 세계와 별 다름이 없어 보였다. 노인이나 어린이들이나 모두 다 기쁜 표정으로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무릉도원은 정치적 압박이 미치지 않아 백성들이 기쁜 표정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이상향을 가리킨다. 그런 仙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있었다. 외부적 억압으로 부터 고통을 당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세상 그 어느 곳 보다 행복한 곳이다. 원학동은 바로 이런 무릉도원의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는 가위 十勝之地 버금가는 곳이기에 이곳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四美四友라 다섯 가지 한가로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소강절은 청산녹수청풍명월, 눈, 달, 바람, 꽃 을 꼽은. 무릉도원이라 속세의 분주함을 훌훌 털어버리고 삶의 여유와 마음의 평화가 깃든 호음산 자락 모암헌(帽巖軒) 별유천지에서 유유자적하니 신선이 따로 없도다.
오국헌(吳國獻1599-1672)선생은 원학동을 유람하며 다음과 같이 읊었으니.
원학동을 향해서 가고 또 가는데
동네 안에 다시 청산이 나타나 네
청산이 수석과 잘 어울러져 있으니
열흘 동안 한가함을 얻을 수 있겠구나
行行向 鶴洞 洞裏 更靑山
靑山겸 水石 要得 一旬間
오늘은 삼월 열사흘 날
산은 나왔다 다시 들어가네
어지러이 속세에서 분주한 사람들
어찌 알리 나의 관대한 한가로움
三月十三日 出山更入山
紛紛遊俗子 焉識我寬聞


-붓가는데로 임부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