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언문 투서
작성일: 2015-10-07
한글날 569돌을 맞아 세종대왕 게서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이전 이미 이두 문자가 있었다. 이것을 집현전 학사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구성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하셨는데 일제강점기에 한글이 수난을 당했고 양반층에선 언문이라고 천시해 “언문풍월에 염이 있으랴” 란 말도 있다.
폭군 연산군은 정상적인 언로를 차단하고 독단을 일삼았다. 중론을 무시하곤 옳다싶은 자기생각을 무조건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연산일기》10년 1504년 7월 19일 일자엔 자신을 비판 하는 한글 익명서가 투서된 사건을 계기로 아예 한글사용을 금지해 버렸다.
기록에 의하면 이날 대궐을 찾은 외척 신수영이 익명으로 된 투서를 은밀히 보고했다. 새벽에 어떤 사람이 왕실물자를 관리하는 관청인 제용감정의 심부름을 왔다면서 익명서를 주고 갔다는 것이다.
한글로 된 투서내용이 조방 개금 덕금 고온지 등의 의녀들이 “우리임금 대체 어떤 임금이기에 신하 목숨을 파리머리 목숨 치듯 죽이는가? 라고 말하고 ”우리임금은 여자를 가리지 않으니 조만간 우리 같은 의녀들도 궁궐에 불려가겠구나! 라고 했는데, 왜 그런 사람들을 잡아들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처럼 의녀들이 모여앉아 임금의 인명살상과 여자관계를 비평했는데, 그냥 두느냐고 불만을 담은 익명서였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내용이라면 굳이 익명으로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수상쩍은 생각이 든 연산군은 작성자로 지목된 채용감정 이규를 불러들여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네가 글을 써서 신수영집에 전달했느냐?”
“아닙니다.”
이규의 짓이 아님을 판단한 연산군은 조방 개금 덕금 고온지 의녀들을 잡아들여 국문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들 역시 한결같이 “모르는 일입니다” 결국 투서 작성자는 이규와 의녀들이 아님이 판명되었다.
이상배 전 국사편찬위원위 조사위원은 <조선중기 익명서 사건의 특징과 정치사회상>이란 논문에서, 누군가가 이규와 의녀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투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연산군 자신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리지 못하도록하고, 심지어는 신하들 게 신언패(愼言牌)를 목에 걸고 다니도록 할 정도로 언로를 막는데 대한 반작용이 그런 식으로 표출된 것 이였다.
누구인가가 투서로 비난했는데도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29세의 젊은 연산군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민 모양이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그는 도성의 성문을 닫아걸곤 출입금지명령을 내렸다. 범인의 필체를 알아내려는 조치였지만 앞으로 누구도 한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날인 연산군10년 7월 20일 한글금지와 관련해 연산군이 내린 전교의 내용은 이러하다.
「앞으로 언문을 가르치지도 말고 배우지도 못하며, 이미 배운 자도 쓰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언문을 아는 자를 한성의 오부9한(성의 다섯 구획)에 신고하도록 하고, 알고도 고발하지 않는 경우에는 이웃사람까지 함께 벌주라.」
폭군 연산은 한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함은 물론 아는 자들조차 관아에 신고토록 하고 게다가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식으로 이웃사라들에게 까지 연대책임을 지웠다. 앞으로 조선 땅에서 오로지 ‘중국글자’만 사용하라고 엄명을 내린 것이다.
한글익명서로 투서한 것에 대한 분풀이치고는 너무 지나친 대응이었다. 그 순간 연산군은 한글을 창제하신 4대조가 얼마나 원망 스러웠을까? “그냥 세계최강 명나라의 글자를 쓰면 될 것이지. 왜 이런 글자를 만들어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게다.
연산군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질 않았다. 이틀 뒤인 7월22일 엔 한글로 토를 단 한문서적까지 모조리 불태우라고 명령을 했으니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떠올리게 한 조치였다. 그 보다 더 황당한 조치는 사흘 뒤인 7월 25일에 언문과 한문을 아는 자 들의 필체를 확보해 두라는 명령이었다. 언문 및 한문을 각각 네 장의 글을 쓰게 한 뒤에 대궐 의정부, 사헌부, 승정원에 한 장씩 보관하도록 한 것이다. 작금 오늘날 국민의 지문을 확보해 둔 셈이다.
자신에 대한 비난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을 때 이런 詩를 남겼다. “누가 능히 충심을 다해 이 용열한 임금을 도와 풍속을 바로잡을 것인가>?” 자기 주변에는 비판자만 있을 뿐 도와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 한 문구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못한 폭군연산, 그는 비판하는 사람도 싫었고 비판하는 문서도 싫었다. 그래서 한글 사용금지령을 내렸던 것이다.
-붓가는데로 임부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