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號호에 얽힌 에피소드
작성일: 2015-11-11
호는 한국, 중국 등 동양에서 본명이나 字 외에 허물없이 부르기 위해 이름 대신 號를 받아쓴다. 집안에서 쓰는 당호라든지 詩나 書畵 등에도 아호나 별호를 쓰는데 아마 쉽게 부를 수 있는 예명 닉네임 Nick Name 정도로 이해하게 된다.
1590년 김계행金係行은 경북 안동시 갈안면 묵계리 사람이다. 17세에 진사가 되고 50세에 式年시에 급제하여 연산군 땐 대사간이란 언론과 규찰을 주도하는 벼슬에 올랐다. 그 시기 혼란 한 정국政局의 국정國政을 바로잡기 위해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내려놓고 안동으로 낙향한 올곧은 사람이다.
그의 號 보백당寶白堂의 ‘보백’ 이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곧고 깨끗함을 뜻하는 “청백(淸白)을 보물로 삼는 다” 는 의미다.
성리학자 조식曺植선생의 호 남명南冥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노장사상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조선후기 호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秋史 金正喜선생으로써 알려진 것만 500개나 된다.
1945년에 편찬된 《대동명가호보 大東名家號譜》엔 당堂, 암巖, 실室 등으로 끝나는 호가 많았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한글전용세대는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문학예술 유림儒林 등 일부 계층에서만 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호를 통하여 시대를 초월해 옛 사람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의 일면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재미나는 학문이라 여긴다.
필자의 5대조의 호는 모암母巖이시고, 증조부는 오당塢堂 조부는 회당晦堂 선친은 유당維堂이시다. 필자는 청년기에 교분을 가진 月刊文化財를창간한 故 喜齊황규동선생이 돌석‘石’자를 同學 국도일보 이림 전 사장이 골곡‘谷’ 자를 한자씩 구걸求乞하여 ‘石谷’이라 칭했는데, 선대에 석곡선생과 겹치는 고로 되 물린 에피소드가 있다. 그 후 절친이 萬靈盤龜: 신령스런 거북 바위를, 자작 書堂谷娾人: 서당 골에 즐거운 사람을, 범 두둑: 범이 노는 언덕을, 文友가 竹田: 곧은 대밭을, 필명으론 「林扶陸의 붓 가는대로」「一言 居士」를 쓰고 있다.
5세조님은 앞山 사모紗帽바위 모암母巖을 호로, 난 원경 현성산암석에 박힌 호랑이 형상인 ‘虎巖’을 쓰다가 집에서 멀리 보는 그림은 배고파 사냥하는 비호飛虎로 보이는데, 수승대 쯤에서 본 근경은 배부른 호랑이인지라 만호‘滿虎’ 라 했다가, 돼지 같은 호랑이와 흡사해 돈호 「豚虎」로 바꾸었다.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술독에 빠지다 시피 사니까 게을러터지고 매사 되는 일이 없기에 自作 ‘돼지 같은 놈’ 미련퉁이가 제격이라 도야지 돈豚자에 범 호虎자를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그렇게 굳히기로 作定 담소자약談笑自若하는 벗들에게 한턱하곤「豚虎 居士」라 불러주길 청했다.
붓 가는 대로 임부륙 r200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