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갈대와 기러기

작성일: 2016-02-18

韓國畵소재로 곧잘 등장하는 기러기는 길조吉鳥로 보기 좋은 새이고 갈대와는 떼어놓을 수가 없는 그림자 적 존재이다. 독화(讀畵그림을 읽다)란 그림은 눈으로 그리지 않고 말과 뜻과 표현이 같은 사물을 구상構想하는 형식이 한국화에선 삼천여년간이나 지속된 관계요 법칙이다. 그래서 민화나 한국화를 독해하려면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지식인 것이다.
본지에 “벽사부적(벽邪符籍)이라 요사스런 잡귀와 재앙을 쫓는 웃음의 전도사” 김종철씨 당호堂號가 갈대 노蘆자에 밭전田자를 쓴 노전蘆田은 갈대밭이다. 갈대는 초가을에 갯가에 피고 지는 꽃이다. 하지만 엄동설한에 노도怒濤와같은 강풍强風이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서서 아무 일도 없었던 양 꽃이 갈대꽃이 하늘거리는 질긴 생명력! 그 갈대 늪에는 민물고기가 지천이라 늘 천렵꾼이 모여들기 마련이라서 갈대밭 마음이 노전蘆田인가 싶다.
韓國畵에서 갈대와 기러기는 편안한 노후를 뜻한다. “<노안도蘆雁圖>는 글자그대로 갈대와 기러기를 그린 그림이다” 이것을 “갈대밭에 앉은 기러기”라 하면 틀린 설명이 된다. 기러기와 갈대가 나란히 있거나 기러기가 갈대를 물고 새가 디비씨 날아가도 모두가 <노안도>인 것이다.
‘갈대와 기러기’ 하면 한학자들은 먼저, 기러기가 갈대를 물고 날다 의 함로銜蘆를 떠올린다. 이 말은 난세에 보신책을 강구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옛날 중국에서 기러기들이 겨울을 나려고 양자강 남쪽으로 날아 올 때는 북쪽에서 배를 주린 탓에 몸이 가벼워서 하늘높이 날아왔지만, 봄에 다시 날아갈 때는 남쪽에 와서 사는 동안 살이 쪄서 높이 날지를 못해서라 이때를 놓칠세라 어부들은 그물이나 망을 치고 기러기 사냥을 하는데, 한 편 기러기들은 그물에 걸리지 않을 방도로 갈대를 꺾어 가로로 물고 날았다고 한다. 그래서 “갈대를 물다”라는 말은 “신중히 처신 한다.” 라는 뜻으로 통한다했다.
우리나라에선 조선 중기에 이징李澄이 <노안도>를 그렸지만, 대원군 집정시대에 위사 강필주(渭士 姜弼周)라는 화가가 많이 그려 널리 퍼트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최고 권력자인 대원군 이하응의 파락호破落戶라 시쳇말론 건달 경호원이자 붕우朋友인벗이 다. 그런 그가 보신책의 강구로 그림을 그렸다니 아이러닉하다.
대원군의 ‘堂號가 老安堂’이었다. 따라서 강필주는 주인인 대원군의 당호를 주제로 하여 그림을 많이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후기 양기훈이 10첩 병풍 노안도에 기러기 백 마리를 그려 넣었는데, 이것은 완전수인 일백 백‘百’자에 편안할 안‘安’자를 독음讀音하면, 文人畵란 詩를 읊음 이고, 그림이 다분히 詩的이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詩를 짓고 자 하는 마음이 시정詩情이라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화의畵意라는 것을 알만하다.
옛적에 어부가 강가 갈대밭에 놀고 있는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아다 새장에 가두어 놓았다. 기러기 수놈이 날아와 저녁내 울어대더니 아침에 나가보니 새장에 같인 암놈과 밖에 있던 수놈이 목을 걸고 죽어있어서 어부가 강가 갈대밭에 묻어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그래서 자처지종 그 연유를 이웃에 알려준 후론 살아있는 기러기를 혼례상위양쪽에 올려놓고 예를 치르다가 기러기는 겨울 철새라서 잡을 수가 없으므로 나무로 다듬어 만든 기러기로 대신했다. 그 후 닭을 폐백에 쓰기도 했다. 원앙금침이라고 원앙새는 금실이 좋기로 소문이 났지만, 기실 일부다처이고 바람둥이 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혼례상에 올리기를 꺼리어 금기시했다.
<림부륙 r200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