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통과 삶의 인식
작성일: 2016-03-30
요즘 부모가 어린이 학대의 한 예로 4살 여아를 살해 유기하곤 자살한 어머니의 편집증은 정신병의 일종이다. 더하여 노인 백수시대와 맞물리는 노인 경시 해결책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웃동네에 재산이 많아 어른들 평생엔 걱정 없는 집이 있었다. 한데 치매에 걸린 노인을 자식들이 저급시설로 데려갔다고 수근 거린다. 치매 또한 정신질환이고, 일반상식으론 노광老狂 들었다고 하는 병이다. 이렇게 아동학대, 노인 경시풍조에 대한 심각한 사회문제에 근본적인 타결 책을 원하는 바이다.
인간의 삶엔 喜怒哀樂이라 정열, 쾌락, 슬픔, 기쁨, 등 고통과 여러 가지 감정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누구도 근원적인 존재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존재의 유한성으로 인해 궁핍 권태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라고 했다.
인간은 자기부정이나 불만을 가지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가학적 행위를 즐기기도 하고, 스스로 자책하며 고통을 주는 사디즘 행위를 즐기기도 한다.
쾌락과 불쾌, 만족과 불만, 가학증과 피학 증 사이에서 인간은 기쁨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간다. 인간은 근심, 권태, 잔인성, 야만성, 복수, 경멸감, 무력감, 우울증, 양심의 가책 등을 느끼며 사는 지구상의 유일한 피조물creation인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에서든, 사회적인 원인에 의해서든, 인간관계에 의해서든,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심리적 고뇌를 수반하는 고통을 느끼며 삶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삶에 좌절하거나 무기력하고 고독해하고 심신의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은 두 가지 근본적인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 특정한 사실과 특정한 동일성을 믿고 현재의 상태를 과거의 상태와 비교함으로써, 또 그것들을 동일시하거나 차별화함으로써 “모든 기억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정신적인 쾌감이나 불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 다른 하나는 의지의 자유를 믿는 것인데, 예를 들면 “이 일은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이것은 다른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었는데”라고 생각하면 마찬가지로 쾌감이나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삶의 지혜’를 찾고자하는 철학적 운동의 선구자격인 최근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철학자이자 대중작가는 ‘프레히트 Richard david precht' 인데, 그는 ‘나는 누구인가’ ‘감정이란 무엇인가’, ‘기억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삶은 의미를 가지는 가’ 등과 같은 너무나 평범한 철학적 물음을 쉬운 철학언어로 설명하면서 우리가 쉽게 접 할 수 있는 지상의 철학을 전한다.
끝 간대 없고 종잡을 수 없는 해괴망측한 살인사건들을 TV프로에서 패널들이 분석을 하지만 그건 수박 겉 할 트기 식 일뿐 근본대책엔 미흡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세상이 온통 광기狂氣로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라! 세계 도처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자폭 테러사건, 북의 김정은 핵으로 으름장을 놓고, 국회 정당의 선거판 에선 “셀프 공천” “옥쇄파동” 등 창피한 행위를 반복함에 따라 제精神으론 저질 수 없는 일들이 백주에 벌어짐은 막말로 나라전체가 다 精神病者들인데 그들에게 바랄 건더기는 전혀 없다고 하겠다.
이창호와 대국한 “알파고 로봇” 외 마침 해외뉴스 창에 로봇 인공지능을 주입 시켜 사람과 거의 같은 감정까지 표현하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 時代의 광기는 現世인류가 처한 공통분모이기에 차라리 Gentle 한 로봇에게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맡겼다 치자. 로봇은 정직하고 진취적 행동만 할 터인즉 로봇이 이끌어 가는, 공상과학세계의 구현엔 즐거움뿐인 극락, 천당 같은 세상이 이뤄질 것 같은 마음에 투정을 부리는 내겐 너무나 행복한 백일몽白日夢의찰라刹那이다.
“붓 가는대로 림부륙 r200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