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酒力

작성일: 2016-06-01

주력酒力은 사람이 술김에 취해서 힘을 쓰는 것을 일컷는 말이다. 세네카는 말하길 “고통을 당하기 전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쓸데없는 고통을 많이 겪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내가 꿈꾸는 삶을 영위치 못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나는 마음에 간직한 어떤 일에 제동이 걸리어선 이루어지지 않을 기미를 어렴풋이나마 지레짐작하게 될 때가 있다. 가령 가정사, 사업, 건강, 사회단체일 등으로 고심 할 땐 그 타협을 우선 술의 힘에 의지해 처리하려고 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다시 말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감정의 문턱 단계를 술로 해소 하려 했으니까 이 또한 얼마나 못난 짓인가를 미처 몰랐었다.
어쩌면 인간관계가 최악의 상태에서 고통을 겪다가 결국 중대한 결정을 좋든 나쁘든 내려 본 적이 있는가? 나의 경우 酒力인 술김에 의존해 사고思考를 한 것은 수리 발톱같이 예리함을 모른 채 착각 속에서 반평생을 남의 다리 긁듯, 인생살이를 한 셈이다.
어느 날 건강에 탈이 생겨 정신을 차려본즉 굳이 알 콜 중독이란 여간 무서운 것이 아니기에, 금주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도 여전히 술을 먹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은 신체적으로 술이 당기도록 두뇌회로가 오작동 한 것일 게다. 하여 송두리째 뽑아 내팽개치기 까진 신경연상회로가 조율작업을 해 원치 않는 습관을 깨고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그 회로가 거부할 때 까진,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지 않고선 비책이 없는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우습게도 병원에 따라갔다가 나도 비슷한 증세가 있어 검사를 받아본즉 병의 초기증세를 알게 됐다. 의사소견이 가만히 두었으면 죽을 때 까지 모른 채 지나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알은 즉 거기에 신경 쓰면 더 나쁘게 진행될 수도 있으니까 수술을 하잔다. 이런 경우 흔히들 “긁어 부스럼 낸다.”고 하지만, 병이나 모든 일엔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이기에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술로 인한 고초와 즐거움의 회로를 스스로 조정하지 못한 미물이나 다름없는 못난 삶을 살아 온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힌다. 이미 버스는 떠나갔고, 理性的으로 과음의 해악害惡을 알면서도 술자리를 펴자하면 사뭇 즐거웠던, 그 술을 몇 달간 참고 견디기란 고된 형벌이었다. 형님 ‘한잔만’ 할 땐 꿀보다 더 달콤한 술잔을 들다가도 손을 오므리고 팔을 당기기가 쉽진 않았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지능이라고 믿고 싶지만, 대부분 자신의 생각과 연결된 감정이 행동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에 심각성이 있다. 말한바와 같이 술을 끊었다가 절친이 권할 땐 다시 술잔을 입에 대었다 치자, 이것이 중독이기에 담배도 마찬가진 것이 타인이 피는 담배연기가 좋아서 한 개비 입에 문 순간 허사란 것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 온 터. 왜 금연, 금주, 다이어트를 결단해 두곤 즉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망설이게 될까? 내 경우 눈이 늘 토끼눈처럼 결막이 충혈, 하모니카도 배울 수가 없는 처지인지라 끊기로 작정 결단을 내렸다.
우리는 성공, 사랑, 두려움의 극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조율해야한다. 그런 조율작업을 통해 평생 유지할 수 있는 방편의 pattern 을 계발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선 변화할 준비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상담사가 되어야 하고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사물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처럼 난 기고만장한 술버릇 즉酒力을버려야만 제명을 보전할 것 같아, “술이 원수”라는 부끄러운 속어를 일 캐어 본다.


림부륙 r2005@daum. 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