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자의 자기소개서
작성일: 2016-06-16
孔子님의 일생은 과연 행복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시고 타향살이를 하며 가계를 책임지는 소년가장 이었다고 한다. 청년기엔 요샛말로 3D업종인 험한 일을 닥치는 대로 해야만 했다. 힘들여 학문적 교양을 쌓은 뒤에도 그는 제자들을 교육했지만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정치적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조국 노나라를 떠나 두 차례에 걸쳐서 15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는 이 기간 중에 몇 차례의 행운을 붙잡을 수 있었지만 매번 기회는 무산되었고, 심지어 제자들과 함께 집단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이지경이 되면 공자는 성공보다는 실패, 행복보다는 불행, 정의가 무산되는 삶을 영위했다고 밖엔 달리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인생살이엔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보통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버티지만 여러 차례 실패를 겪다보면 의기소침좌절 하다가 끝내 의지를 잃게 된다.
공자사후에 역사적 재평가를 통해 보상 받았다고 하더라도 생전의 고통스런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공자도 역시 사람일 진대 실패로 이어진 삶에서 자신을 어떻게 추스를 수 있었을까? 공자생전에 스스로 토로한 말을 통해서 그의 인생담을 들어보기로 하자.
요즘 대학 입시전형에선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어있다. ON-line으로 자기소개서를 입력하게 되어 있는데, 대학마다 글자 수가 다르다. 적게는 500자로 제한하고 많아도 2000자 이내를 쓰라고 한다. 모두들 어떻게 채우나 걱정 투 성들이란다. 오늘 날처럼 입시용은 아니지만 “공자도 자기소개서를 쓴 적이 있다.” 그는 500자 보다도 484자가 적은 16자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雨로 자신의 사람 됨됨이를 소개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 16자만으로도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다. 공자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자 노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공자를 찾아와 만나고자 했다. 섭공葉公이 공자 학교를 찾았다가 먼저 제자 자로子路를 만나고자 했다. 그는 자로에게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예나 지금이나 제자가 선생을 평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지라 평소 괄괄하던 자로 마저도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나중에 공자는 이 소식을 들었다. 그는 잠간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금 새 왜 다음처럼 말하지 않았느냐면서 스스로 자신을 소개 했다. 아마도 평소에 자신의 소개서를 써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짧은 순간 수많은 말 중에서 자신을 그리는 말을 고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에 깊이 열중하다 보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나아가는 길에 즐거워하며 삶의 시름마저 잊어버려서 황혼이 찾아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네.” 공자가 쓴 자기소개서의 풀이이다.
공자는 현실세계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번 번히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실패에도 스스로 허물어지지 않고 발분을 통해서 희망을 살려나갔다. 공자가 쓴 16자만 보더라도 500자에 못지않은 한 인간의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소개서의 글자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을 진실 되게 그려 내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실패에 굴하지 않고 분발을 통해 얼마나 끊임없이 자신을 일으켜 세웠을까?
출세해선 뭘 하나! 신성하고 엄정해야 할 국회란 곳이 비유컨대 망나니 조폭세계보다도 의리라곤 없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여식이 웬 국회의원이며, 선서도 채 끝나기 전에 검은 뒷돈 거래에 휘말린 사건을 보면서, 진 흙탕물정치판에 공자 같은 성인이 발을 담그지 않은 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라 하늘이 돕고 신령이 도운일이였구나 싶기도 하다.
림부륙 r200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