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학동
작성일: 2016-10-18
얼마 전에 거제문화원에서 주간하는 향토사 세미나에 참석해 청학동靑鶴洞에 관하여 논한바 있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지세는 지기地氣가 살아있는 갈지之자형 산세이다. 크고 작은 산과 계곡이 굽이쳐 감돌아 겹치는 듯 험한 지형의 길지吉地라면 청학동을 유추하게 된다. 거기가 신선이사는 곳 ‘동천洞天 복지福地’ 라면 청학동靑鶴洞의 立地론 금상첨화일 것 같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이상적이자 온전한 세계가 이상향理想鄕이라면 이보다 낳은 복된 터는 없지 않을까. 허구한 날 구도자들이 청학동을 찾아 나섰지만 아직은 “여기 다” 라고 꼭 집어낸 번지수가 없다. 꿈에 그려본 요지경속별천지 무릉도원 같은 그림이지 싶다. 청학이 천년을 살면 현학玄鶴이라 검은 학이 된다는 곳 최고운이 지금도 청학을 타고 지리산에 노닐고 있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중국 후한 때 엄자릉嚴子陵란 어부가 살았다. 그이는 세속을 피해서 살아온 둔세遁世형 은자隱者이다. 황실조정에서 자신에게 벼슬을 내릴까봐 절강 성 부양 시에 있는 부춘산富春山 칠리탄에 숨어살면서 낚시질한 물고기로 명命 부지扶持 한 사람이다.
친구인 광무제光武帝(劉文叔)가, 황제에 오른 뒤 그를 불러들여 벼슬을 권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고 유숙의 배위에 다리를 올린 채 하루 밤을 지낸 다음 산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세상만사의 일이 낚시 대 하나에 있나니
높은 벼슬 준다 해도 이것과는 안 바꾸리
평생에 내 잘못은 유숙을 알았던 것,
가짜이름 일으켜 세상을 가득 채웠구나
뒷날 범중엄은 그의 인품을 일러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했다. “산은 변함없이 높고, 물은 늘 주야로 흐른다.” 벼슬이란 한갓 순간의 헛된 욕심이라는 말과 같다고 했다. 모두가 이름 내기를 좋아하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이다. 두고두고 곱씹어 새겨볼 말이다.
뿐더러 이래서 청학동靑鶴洞은 현실도피자들의 마음한구석에 남아있을 뿐 어디에고 현실세계엔 없는 허공의 성채 신기루를 본격일 게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맴도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골짜기 상그릴라Shangrila라 이상향理想鄕이 나름의 청학동이 아닐까 한다.
우리민족에겐 청학이 사는 곳이 동천이자 복지로 꿈에도 그리는 이상향으로 자리매김해 온 것이다. 나라 안에 청학이란 이름이 붙은 곳은 자그마치45곳이고 단일 시군으로는 지리산 하동이 세 곳으로 가장 많다. 청학동은 민중이 그려낸 것이리라. 춥고 배고팠던 민초들이 청학동이 실재했으면 좋겠다는, 언젠가는 새로운 세상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었을 것 같다.
청학이 울고 비밀의 문이 열리는 그날을 기다리자. 내가 살고 있는 복 받은 자리 치내 숲 청학교靑鶴橋를 건너면 청학이 검은 새 된 길조황새를 벗 삼아 청학동이련 하고 맘 편히 사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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