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가는대로>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작성일: 2005-01-24

“일체의 경의 첫머리에 어떠한 말을 먼저 해야 합니까?” 붓다가 대답하기를 “모든 경은 마땅히 첫머리에 여시아문(如是我聞) 일시 불재 모방 모 국토 모처 모 등의 대중과 더불어 함께 하였음을 명시하라” 우리가 경전의 첫머리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문구이다. 붓다의 이와같은 유언에 따라 경전은 여섯 가지의 조건을 갖추게되는데 이를 육성취(六成就)라고 한다. 즉, 신성취·문성취·시성취·주성취·처성취·중성취 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명심하고 본받아 실천해야 할 유익하고 현명한 행동지침이 될 수 있다. 모든 불경의 서두에 여시아문 즉,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라로 시작된다.
如是는 ‘이와 같이’라고 하는데 내용에 있어 조금도 보태거나 빼는 것이 아니라 꼭 그렇게 들었다는 것을 분명히 믿게 함이 신(信)성취이다.
문성취의 我聞은 내가 들었다는 것이다. 남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분명히 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붓다의 수제자 아난존자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직접 보거나 듣지 않은 것은 전달하지 않는 것이 말이나 글로 인한 과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時성취는 말씀을 들은대로 분명히 하는 것인데 경전은 모두 一時라고 통일되어 있다.
그것은 현실의 이해관계나 사건발생의 때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主성취는 누구에 들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헛소문’ ‘뜬소문‘ 근거 없는 말이 되어서 화를 입는 경우를 일상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處성취는 들은 장소를 분명히 하는 것이며, 衆성취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한 대중들로 하여금 믿음 주는데 의미가 있는, 진실일지라도 증인이 없으면 난감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육성취는 오늘날 육하원칙과 비슷하지만 말씀에 대한 논리적 확신을 갖게 하는 부처님의 유언을 나 자신의 행동지침으로 삼아야겠다. 작문공부를 해보지 않은 필자로서는 口是禍聞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열 가지 불 선업 가운데 말로인한 악 업이 네 가지나 되고 더욱이 말싸움·말장난·뜬소문·흑색선전·중상모략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명심해야 할 부처님의 유언이다.
거듭 밝히건대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짧은 밑천.
초등학교 때 시한 수 지어 공책 세 권을 교육장상으로 탄 것이 전 경력인데 고인이 된 G신문 김 사장의 권유로 칼럼 ‘초대석’에 달필 연재를 계기로 어언 8년이란 세월이 흘러 지금은 본지의 ‘林扶陸 붓 가는 대로’에 기명칼럼을 쓰고 있다.
남들은 거미줄치듯 술 술 나오는 것 같이 알겠지만 실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고 긴장의 연속으로 피 마르는 작업이었음을 감히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부처님의 육성취와 같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의 육하원칙을 늘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