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의 위기 속에서 전국의 지자체들이 체류형 관광과 문화 도시를 외치지만, 정작 “왜 그곳에 가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는 곳은 드물다. 대다수의 지자체가 과거의 유산이나 정적인 자연경관에 매몰되어 있을 때, 경남 거창은 전 세계가 열광한 현대적 디지털 콘텐츠의 발상지라는 독보적인 기회를 맞이했다. 글로벌 누적 조회수 143억 회를 기록하며 K-웹툰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나 혼자만 레벨업」의 작화가, 故 장성락 작가가 거창 가북 출신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지역 연고를 넘어 거창이 이미 세계 콘텐츠 지도 위에 기록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거창은 선택해야 한다. 그를 단지 기억의 상자에 가둘 것인가, 아니면 도시 전략의 출발점으로 확장할 것인가.

지방 문화정책이 반복해온 고질적인 한계는 인물을 기념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 인물을 산업 구조로 전환하는 데는 실패해 왔다는 점이다. 문화는 기억만으로 도시의 미래가 되지 않는다. 기억이 공간으로 조직되고 경험으로 설계될 때 비로소 도시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웹툰이라는 장르를 넘어 애니메이션과 게임, 영상 콘텐츠로 확장되는 글로벌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이미 세계 시장에서 독립적인 팬덤을 형성한 강력한 플랫폼이다. 기존의 지방 문화 자산이 대체로 보존 중심의 성격을 띠는 것과 달리, 이 콘텐츠는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 산업과 직결되는 확장성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장성락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니라 거창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산업 자산이다.

이러한 자산을 실질적인 도시 전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징적 공간의 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도시는 기억이 아니라 물리적 공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가북면 일대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거리 조성과 작품의 세계관을 반영한 스토리 산책로는 단순한 기념사업을 넘어 거창이라는 도시 서사의 물리적 구조를 만드는 작업이 된다. 특히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세계관은 AR과 VR 같은 몰입형 기술과 결합할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헌터 등급 테스트나 던전 탐험 시뮬레이션 같은 프로그램은 전시를 넘어선 참여형 서사 경험을 제공하며, 이는 방문형 관광을 넘어 창작형 지역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전략적 교두보가 된다.

결국 지방 도시의 문화정책이 생명력을 얻으려면 기념을 넘어 ‘재생산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장성락 장학사업이나 전국 단위 웹툰 공모전, 청소년 창작 캠프와 같은 정책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제2의 장성락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는 일이다. 도시의 문화 브랜드는 언제나 한 사람의 이름에서 시작되지만, 그 이름을 디딤돌 삼아 다음 세대를 길러낼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많은 지자체가 체류형 관광을 목표로 삼지만, 전략은 언제나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 거창에 와야 하는가.” 세계 143억 조회수 콘텐츠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자랑거리가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가장 현대적인 무기다.

장성락이라는 이름은 이제 한 작가의 이력을 넘어 거창이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도시 서사의 출발점이다. 그 선택은 이제 기억의 영역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전략의 문제이며, 지금이야말로 거창이 세계적 콘텐츠의 성지로 도약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전환의 순간이다

필자 민병주씨는  거창지역 현안을 연구하고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