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93회 거창군의회 임시회에서 국민의힘 4선 표주숙 의원이 거창군 최초의 여성 군의장으로 선출됐다. 여성 의장의 탄생은 거창군 지방의회 역사에 의미 있는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일이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초선 하병오 의원이 부의장으로 선출되면서 겉으로는 여야 협치의 출발을 알리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반면 이웃 함양군의회는 국민의힘 임채숙 의원을 군의장으로, 신양범 의원을 부의장으로 선출하며 원 구성을 신속하게 마무리했다. 같은 시기에 출범한 두 의회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거창군의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정당정치의 실종이다.
국민의힘은 전체 11석 가운데 6석을 확보한 다수당이다. 다수당이라면 내부 협의를 통해 의장 후보를 단일화하고, 군민에게 안정적인 의회 운영을 약속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지역위원장의 리더십은 작동하지 않았고, 의장 후보 단일화는 끝내 실패했다. 후보들은 각자의 정치적 계산만 앞세운 채 끝까지 경쟁했고, 그 과정에서 당내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다수당의 책임정치는 사라지고, 정당은 이름만 남았을 뿐 정치적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의장 선출을 둘러싸고 전·후반기 의장직을 나눠 갖는 식의 권력 배분 논의가 거론되면서 의회의 품격은 크게 훼손됐다. 군민을 위한 정책과 비전은 보이지 않고, 자리 나눠 먹기식 정치공학만 남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진 의원들은 서로를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견제와 배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산업건설위원회와 총무위원회 배분을 둘러싼 갈등 역시 이러한 분열의 연장선이다. 소통은 실종됐고, 타협은 사라졌으며, 의회는 출범부터 대립과 반목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결국 원 구성은 멈춰 섰다.
의회운영위원장, 산업건설위원장, 총무위원장 선출을 마쳐야 비로소 정상적인 의회가 출범한다. 그러나 거창군의회는 아직도 그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방의회의 원 구성은 선거 결과에 따른 의석수와 당내 협의를 바탕으로 비교적 원만하게 마무리된다. 물론 여야 의석이 팽팽하거나 무소속의 영향력이 큰 경우에는 협상이 길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거창군의회는 다수당이 존재함에도 내부 갈등으로 인해 스스로 기능을 멈춘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는 단순히 의장 선거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의 실종이며, 책임의 실종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국민의힘 지역위원장이 군수·도의원·군의원 공천을 둘러싸고 많은 후보자와 지역 유권자들의 강한 비판을 받으며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공천 과정에서 무너진 신뢰가 결국 지방의회 내부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군민들은 더 이상 정치인들의 권력 다툼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군의회는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군민을 대표하는 민의의 전당이다. 의장은 명예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의회를 통합하고 집행부를 감시·견제하는 책임의 자리이며, 위원장은 권한이 아니라 봉사의 자리다.
거창군의회는 그동안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으로 군민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제는 '봉숭아학당'이라는 오명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의원들은 자리다툼과 정치적 계산을 내려놓고 하루빨리 원 구성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군민 앞에 약속했던 견제와 감시, 정책 경쟁과 협치의 모습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군민은 권력 싸움을 위해 의원을 뽑은 것이 아니다.
군민의 삶을 바꾸고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을 선택했다. 그 기대를 저버린다면 군민의 심판은 반드시 뒤따를 것이다.
지금 거창군의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권력이 아니라, 더 무거운 책임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