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의 씨앗을 뿌린 100년의 헌신… 거창 근대화의 숨은 주역들
"복음은 예배당만 세운 것이 아니라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며 사람을 살렸다."
경남 거창은 아름다운 산간지역이지만, 100여 년 전만 해도 의료와 교육, 교통이 매우 열악한 오지였다. 이러한 거창에 머나먼 남반구 호주에서 젊음을 바쳐 찾아온 선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교회를 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며 지역사회를 변화시켰다.
양명덕 편저 『호주선교사 거창에 오다』는 바로 이들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기록한 귀중한 지역 교회사이다.
■ 거창을 선택한 호주선교사들
1889년 호주장로교 선교부는 한국 선교를 시작하면서 경남 서부지역을 선교 구역으로 삼았다. 이후 진주를 중심으로 사천, 산청, 함양, 거창, 합천 등지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당시 거창은 교통이 불편하고 생활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선교사들은 말을 타거나 걸어서 수십 리 산길을 넘나들며 마을마다 복음을 전했다.
비가 오면 길이 끊기고 겨울에는 눈 덮인 고개를 넘어야 했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 교회만 세운 것이 아니었다
호주선교사들의 사역은 단순한 전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문맹 퇴치를 위한 성경학교 운영, 어린이 교육 확대, 여성 교육 활성화, 의료 봉사, 위생교육, 빈민 구제, 농촌계몽운동
등을 통해 거창의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한글을 배우기 어려웠던 농촌에서 성경을 읽기 위한 글공부는 곧 교육혁명이었다.
특히 여성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당시 사회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 거창교회의 뿌리가 되다
오늘날 거창지역 곳곳에 세워진 교회의 시작은 대부분 호주선교사들의 순회전도에서 비롯됐다.
한 가정에서 시작된 예배는 사랑방 교회가 되었고, 사랑방은 초가예배당이 되었으며, 초가예배당은 오늘날 수많은 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거창 복음화의 역사는 바로 호주선교사들의 헌신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복음은 삶으로 증명되었다
선교사들은 한국인들과 함께 먹고 함께 생활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굶주린 사람을 도왔으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말보다 삶이 먼저였기에 주민들은 그들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복음은 설교보다 사랑으로 먼저 전해졌다.
■ 일제강점기에도 꺼지지 않은 신앙
일제강점기는 한국교회가 가장 큰 시련을 겪던 시기였다.
신사참배 강요와 민족 탄압 속에서도 거창의 교회들은 믿음을 지켜냈다.
호주선교사들은 한국인 지도자를 세우고 자립하는 교회를 만드는 데 힘썼으며, 이는 해방 이후 거창교회가 빠르게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 선교는 지역사회를 바꾸었다
오늘날 거창은 교육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교육문화의 밑바탕에는 초기 선교사들이 심은 교육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의료봉사와 봉사정신은 지역사회 나눔 문화 형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사회안전망 역할까지 감당했다.
■ 『호주선교사 거창에 오다』가 남긴 의미
양명덕 편저의 『호주선교사 거창에 오다』는 단순한 교회사 기록이 아니다.
이 책은 거창 근대사의 한 축을 복원한 역사서이자, 잊혀져 가는 선교사들의 헌신을 후대에 전하는 소중한 기록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장의 숫자보다 섬김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이 책은 초창기 선교사들의 삶을 통해 교회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고 있다.
■ 기자의 시선
우리는 흔히 거창의 발전을 행정과 경제의 역사 속에서만 찾으려 한다.
그러나 교육과 의료, 봉사와 나눔, 그리고 공동체 정신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이름 없이 헌신했던 호주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거창에서 큰 건물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을 남겼고,
믿음을 남겼으며,
희망을 남겼다.
복음은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었고, 한 지역의 역사를 바꾸었다.
100여 년이 지난 오늘, 『호주선교사 거창에 오다』는 우리에게 묻는다.
"오늘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