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창국제연극제가 올해로 제36회를 맞았다.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야외연극축제로 명성을 떨쳤던 거창국제연극제는 지역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의 공연예술인들이 찾는 국제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하며 '연극도시 거창'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오늘의 거창국제연극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가장 큰 이유는 축제 운영의 지속가능성과 재정 구조에 있다.
거창국제연극제 상표권은 2019년부터 이전 절차가 추진되어 2021년 거창군의회 회의록에서도 이전이 타결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후 2022년부터는 거창군이 직접 주최·주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느덧 5년째를 맞았지만, 정작 국비 확보를 위한 뚜렷한 전략이나 성과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과거 민간이 운영하던 시절에는 전문적인 축제 운영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국회와 중앙부처, 기업을 대상으로 국비와 협찬을 유치하는 전문 인력이 활동했고, 대한민국 연극계와 대학 연극영화과 교수 및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이어졌다. 그 결과 국비 약 3억5천만 원, 도비 2억 원, 군비 5억 원, 티켓 판매 1억5천만 원, 기업 협찬 1억 원 등 총 12억~13억 원 규모의 예산을 다양한 재원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반면 현재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국비 지원은 물론 티켓 판매와 기업 협찬의 비중도 크게 줄면서 대부분의 재정 부담이 군비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열악한 지방재정 여건 속에서 군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구조이며, 매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연극제 존립 자체가 논란이 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축제의 정체성이다.
'국제연극제'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국제적 위상과 전문성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국제교류의 규모와 작품 수준, 관객 유치, 프로그램 구성 등 여러 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새로운 시도를 반복하지만 장기적인 발전 전략보다는 단기적인 변화에 치우치면서 축제의 일관성과 브랜드 가치도 흔들리고 있다.
국비를 지원받는 문화예술축제는 공연 수준, 기획력, 관객 규모, 티켓 판매율, 예산 운영, 지역경제 파급효과 등 다양한 항목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평가는 단순한 심사가 아니라 축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반대로 국비 지원 체계 밖에 머무르면 이러한 객관적인 평가와 경쟁 시스템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역 여론이나 단기적인 요구에 따라 방향이 흔들릴 수 있고, 전문성보다는 행사 중심의 운영으로 흐르기 쉽다. 결국 '국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물론 국비 확보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관련 기관의 공모사업은 경쟁이 치열하며 엄격한 평가를 거친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도전조차 하지 않는다면 거창국제연극제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 거창군은 보다 근본적인 운영 혁신에 나서야 한다. 국비 확보를 위한 전문 조직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기업 협찬과 후원 시스템을 활성화해야 한다. 동시에 티켓 판매를 확대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과 공격적인 홍보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외 연극계와의 협력 네트워크를 복원하고, 대학과 예술단체, 문화기관이 함께하는 참여 구조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거창국제연극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다. 거창의 문화 브랜드이자 지역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그러나 문화자산은 이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전문성과 경쟁력, 그리고 지속 가능한 재원 확보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은 연극제 예산을 줄일 것인가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국비를 확보하고 민간 협찬을 늘리며 자생력을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거창국제연극제가 다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공연예술축제로 도약할 수 있을지는 결국 행정의 전략과 전문성, 그리고 지역사회의 지혜를 얼마나 모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는 과거의 명성에 기대기보다 미래를 위한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