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여 년 전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선교사들… 이제는 그들의 발자취를 기억해야 합니다”
정춘석 거창군기독교문화원 원장에게 듣는 호주선교사의 거창 선교와 기념관 건립의 방향
우리에게 기독교는 이제 낯선 종교가 아니다. 수많은 교회가 지역 곳곳에 세워졌고,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의 중심 국가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그러나 복음의 씨앗이 처음 뿌려지던 시절을 돌아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30여 년 전, 호주에서 온 젊은 선교사들이 부산과 경남지역에 들어왔다. 당시의 교통과 생활환경을 생각하면 이들의 한국행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특히 거창은 당시 선교사들에게 말 그대로 ‘땅끝’과 같은 곳이었다. 부산에서 마산으로, 다시 배와 육로를 거쳐 진주에 도착한 뒤 말이나 나귀를 타고 이틀을 더 가야 거창에 이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거창에는 스텔라 스코트, 프레더릭 매크레이, 제임스 켈리, 엘리자베스 에버리, 프레더릭 토마스, 제인 매카그, 에셀 딕슨, 엘리자베스 던 등 여러 호주 선교사들이 찾아왔다. 이들의 거창 선교활동은 책에서 1909년부터 1941년까지의 역사로 정리돼 있다.
최근 이들의 삶과 활동을 기록한 책 『호주선교사, 거창에 오다』가 발간되면서 거창의 기독교 역사와 호주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다시 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책의 발행 글을 쓴 정춘석 거창군기독교문화원 원장을 만나 호주 선교사들의 거창 선교 의미와 앞으로 추진해야 할 기념사업에 대해 들어봤다.
“그들은 왜 거창까지 찾아왔을까?”
■ 정춘석 원장 인터뷰
― 먼저 호주 선교사들의 거창 선교를 다시 조명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는 130여 년 전 처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가족과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로 왔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생활환경도 전혀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거창까지 찾아왔습니다.
당시 거창은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부산에서 마산으로 이동하고, 다시 진주를 거쳐 말이나 나귀를 타고 거창까지 들어와야 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에게 거창은 상당히 먼 지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곳을 찾아와 복음을 전했습니다.”
― 그렇다면 거창에 왔던 선교사들은 어떤 분들이었습니까?
“이번에 발간한 책에는 스텔라 스코트, 프레더릭 매크레이, 제임스 켈리, 엘리자베스 에버리, 프레더릭 토마스, 제인 매카그, 에셀 딕슨, 엘리자베스 던 등 여덟 분의 기록을 중심으로 담았습니다.
이분들은 단순히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게 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교육과 의료,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사역 등 당시 지역사회가 필요로 했던 다양한 일들을 함께 감당했습니다.
스텔라 스코트 선교사는 1920년부터 1941년까지 무려 21년 동안 거창에서 사역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에버리 역시 1914년부터 거창에서 활동한 기록이 있습니다. 프레더릭 토마스 목사는 1916년부터 1922년까지 거창에서 사역했습니다.”
― 책을 발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선교사들의 이름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거창에 왔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번 책에는 당시 선교사들이 직접 작성했던 보고서와 편지, 사진 등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책의 목차도 거창선교부 사진과 1909~1941년 거창지역 선교활동을 시작으로 선교사 각각의 보고서를 담았습니다.”
“기록을 남기는 것은 과거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 선교사들의 역사를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거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분들의 삶을 통해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들도 해외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몇 명의 선교사라도 돕기 위해 교회들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힘을 쓰는 일들이 옛날 우리나라에 찾아왔던 선교사들의 순수함과 헌신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어떤 희생을 감당했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가 선교를 바라보는 자세도 달라질 것입니다.”
정 원장의 이 같은 생각은 책의 발행 글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호주 선교사들의 기록을 통해 그들의 희망과 기도, 고뇌를 후대에 알리고, 오늘날 교회가 그들의 순수함과 정신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거창군민 모두가 알아야 할 역사”
― 이 역사를 기독교인들만의 역사로 봐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호주 선교사들의 거창 선교 역사는 단순히 교회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거창에 와서 무엇을 했는지, 당시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어떤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지를 지역 주민들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거창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발간했습니다.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지역의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 학생들, 젊은 세대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실제로 『호주선교사, 거창에 오다』는 2025년 6월 출간됐으며 270쪽 분량으로, 거창선교부 사진과 1909~1941년 선교활동, 선교사 8명의 보고서를 담고 있다.
“이제는 기념관을 고민할 때입니다”
― 앞으로 호주 선교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어떤 사업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책을 발간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기록하고,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창에도 호주 선교사들의 삶과 정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념관 건립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선교사들의 사진 몇 장을 전시하는 공간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어떻게 거창에 왔는지, 당시 거창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디에서 활동했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어떤 교육과 의료·복지 활동을 했는지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정 원장은 특히 젊은 세대가 찾는 역사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들어와서 옛날 사진만 보고 나가는 곳이 아니라, 당시 선교사가 거창까지 어떻게 왔는지 영상으로 보고, 옛날 선교사의 가방이나 의료도구, 성경책 등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교육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호주선교사 기념관’을 준비하자
“과거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역사문화공간으로”
호주 선교사들의 거창 선교 역사가 책 한 권으로 정리됐다면 이제 다음 단계는 ‘공간’으로 역사를 남기는 일이다.
이미 부산·경남지역에서는 호주 선교사들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2023년 개관한 호주선교기념관은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호주 선교사들의 역사와 정신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부산·경남지역을 선교지로 삼은 호주 선교사들의 역사는 교육·의료·복지 등 다양한 영역으로 이어졌다.
거창 역시 이러한 흐름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① 거창선교역사의 ‘출발점’을 만드는 기념관
기념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거창 선교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다.
1909년부터 1941년까지 이어진 호주선교회의 거창지역 활동을 연대순으로 정리하고, 선교사들의 사진과 편지, 보고서, 당시 지도와 신문자료 등을 전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공간 구성이 필요하다.
▲ 제1전시실 – “호주에서 거창까지”
호주 선교사들이 고향을 떠나 한국에 들어온 과정과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소개한다.
호주 → 부산 → 마산 → 진주 → 거창
당시 선교사들이 거창에 들어오기까지의 여정을 지도와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제2전시실 – “거창의 선교사들”
스텔라 스코트, 프레더릭 매크레이, 제임스 켈리, 엘리자베스 에버리, 프레더릭 토마스, 제인 매카그, 에셀 딕슨, 엘리자베스 던 등 인물별 전시공간을 마련한다.
선교사들의 사진·한국명·활동기간·편지·보고서·사역내용 등을 각각 소개한다. 책에서도 이 여덟 명을 중심으로 개별 보고서를 수록하고 있어 향후 전시 콘텐츠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 제3전시실 – “복음과 교육”
호주 선교사들이 복음 전파뿐 아니라 교육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학교와 교육활동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현재 거창의 교육 발전과 연결해 설명하는 공간이다.
▲ 제4전시실 – “복음과 의료·돌봄”
선교사들의 의료와 보건, 여성·어린이 관련 활동을 소개한다.
특히 에셀 딕슨 등 거창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기록을 중심으로 당시 지역주민들의 생활상과 선교활동을 연결한다. 에셀 딕슨은 거창에 부임해 활동한 선교사로 소개되고 있다.
▲ 제5전시실 – “선교사의 하루”
이곳은 체험형 전시관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당시 선교사가 사용했던 가방과 성경, 편지, 의복, 생활용품 등을 재현하고, 선교사의 하루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면 역사교육 효과도 높일 수 있다.
“기념관은 교회만의 시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방식이다.
거창의 호주선교사 기념관이 건립된다면 특정 교회나 단체만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거창의 근대문화와 선교역사를 보여주는 역사문화시설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창군과 지역 교계, 역사학자, 향토사학자, 교육계,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또한 호주 현지의 교회와 선교 관련 기관, 선교사 후손들과의 교류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과 편지, 일기, 유품 등이 있다면 이를 디지털화해 국내에 소개하는 것도 중요한 사업이 될 수 있다.
“기념관 건립보다 먼저 해야 할 일도 있다”
기념관 건립에는 상당한 예산과 행정절차가 필요하다.
따라서 처음부터 대규모 건물을 짓기보다는 ‘호주선교사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구성 → 자료조사 → 유물 수집 → 선교유적 발굴 → 학술대회 → 전시관 조성 → 독립 기념관 건립이라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먼저 해야 할 것은 거창지역 호주선교 유적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고 기록하는 일이다.
당시 선교사들이 활동했던 교회와 학교, 의료시설, 주거공간 등에 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사해 ‘거창 호주선교사 역사길’을 조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념관을 중심으로 옛 선교 관련 장소들을 연결하면 하나의 역사문화관광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거창의 역사를 세계와 연결하는 공간으로”
호주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거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호주에서 출발한 젊은 선교사들이 부산과 경남을 거쳐 거창까지 찾아왔고, 그들의 흔적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역사와 지역사에 남아 있다.
따라서 거창의 호주선교사 기념관은 거창과 호주를 연결하는 국제교류의 거점으로도 발전시킬 수 있다.
호주 선교사 후손 초청행사, 국제 학술대회, 선교역사 사진전, 청소년 역사캠프, 호주 문화교류 행사 등을 개최한다면 단순한 기념시설을 넘어 새로운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
“130년 전 그들이 거창에 왔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호주 선교사들은 당시 아무런 연고도 없던 낯선 땅 거창을 찾아왔다.
그들이 남긴 것은 단순히 교회의 숫자가 아니다.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 교육에 대한 열정, 어려운 이웃을 돌본 희생,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었던 섬김의 정신이었다.
정춘석 원장은 말한다.
“그분들의 고생과 희생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지치지 않고 열정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기독교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창의 근현대사를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한다는 지역사적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거창은 선택해야 한다.
책 속에 남겨진 호주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과거의 기록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발자취를 찾아내고 보존해 거창의 역사문화자산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호주선교사, 거창에 오다』의 출간은 그 첫걸음이다. 이제 그 다음 걸음은 ‘거창 호주선교사 기념관’ 건립을 위한 지역사회의 논의가 될 수 있다.
130여 년 전 호주에서 거창까지 이어졌던 그 길을 이제는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