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적십자병원 이전·신축 사업에 다시 적신호가 켜졌다.

거창군은 지난 3월 경상남도, 대한적십자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거창적십자병원 이전·신축을 통해 거창·함양·합천을 아우르는 거창권역 공공의료 거점병원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총사업비 약 2,300억 원 규모의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을 건립해 응급·중환자·입원 진료 등 지역 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불과 수개월 만에 사업의 핵심인 병상 규모가 당초 300병상에서 200병상으로 조정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 같은 변경이 지역사회에서 충분한 논의와 검증을 거친 결과라기보다, 예비타당성조사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재정 부담과 사업 규모에 대한 우려를 반영해 보건복지부가 사업계획을 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지금 군민들이 묻는 것은 간단하다.

“도대체 거창적십자병원은 300병상인가, 200병상인가. 그리고 이 사업은 누가 결정하고 누가 책임지는가?”

예타도 끝나지 않았는데 협약부터 체결했다

대형 국책사업에서 예비타당성조사는 사업의 타당성과 재정 투입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그런데 거창적십자병원 사업은 예타가 완료되기도 전에 지방정부가 부지를 조성하고, 기관 간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사업 추진 분위기를 만들어왔다.

물론 병원 이전을 위한 선행 행정절차와 부지 조성 등이 반드시 예타 이후에만 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2,3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이고 국비 100% 투입을 전제로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타 통과 여부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 규모와 재원조달 방식까지 불확실한데 사업이 먼저 진행된다면, 군민 입장에서는 ‘무엇이 확정된 사업이고 무엇이 계획에 불과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행정은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절차와 신뢰다.

300병상에서 200병상으로…처음부터 규모 검증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당초 계획은 18개 진료과,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이었다.

그러나 최근 보건복지부가 예타 진행을 위해 200병상 규모로 변경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서 병원 규모가 대폭 축소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물론 200병상이 지역 현실에 맞는 규모라면 조정 자체를 비판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왜 처음에는 300병상이었고, 지금은 200병상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300병상은 어떤 의료수요 분석과 인구 전망을 근거로 결정했는가.

200병상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했는가.

병상 수를 줄이면 응급·중환자·분만·수술 등 필수의료 기능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

또 향후 ‘기능 변경’을 추가한다면 그 기능은 무엇이며, 추가 비용과 인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병원의 규모는 단순히 건물의 크기를 줄이고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주민이 어떤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핵심 문제다.

거창군이 결정하는 사업이 아니다

이번 사업에서 군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

거창적십자병원 건립의 최종적인 사업계획과 국비 지원 여부를 거창군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질적인 사업 예산과 사업계획은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결정되고,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과정에서는 기획재정 당국의 검토와 예타 등이 뒤따른다.

거창군은 부지 확보와 기반시설 조성, 행정적 지원 등 지역 차원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병원 건립비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아니다.

그렇다면 더욱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군민들에게 “국비 100% 사업”이라고 홍보하기에 앞서 현재 국비가 확정됐는지, 예타는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사업 규모는 얼마인지, 중앙정부가 어떤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공개해야 한다.

국비가 확정되지 않은 사업을 마치 확정된 사업처럼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된다.

병원은 짓는 것보다 운영이 더 중요하다

병원 건립 사업에서 가장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운영이다.

건물을 지어놓는 것만으로 공공의료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의는 확보할 수 있는가.

간호인력은 충분한가.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24시간 운영 가능한가.

수술과 입원 진료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

매년 발생할 운영 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특히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현실에서 200병상이든 300병상이든 실제 환자 수요와 의료인력 확보 가능성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병원을 지어놓고 의사가 없어 문을 닫거나 일부 진료과만 운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혈세 낭비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병상 규모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기능을 갖춘 병원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운영계획이다.

정치권의 역할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지난 3월 국회를 찾아 관련 상임위와 예산 관련 인사들을 만나 예타 통과에 대한 관심과 협조를 요청한 정치권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국회를 방문해 협조를 요청하는 것만으로 사업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정치적 홍보보다 실질적인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어느 기관이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지, 예타 통과를 위해 어떤 논리를 중앙정부에 제시하고 있는지, 300병상에서 200병상으로 변경된 이유는 무엇인지, 향후 필요한 국비 규모는 얼마인지 등을 군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

특히 여야 정치권과 거창군, 경남도, 대한적십자사, 보건복지부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거창군민에게 필요한 것은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다

거창적십자병원 이전·신축은 반드시 필요한 사업일 수 있다.

거창뿐만 아니라 함양과 합천을 포함한 서북부 경남지역의 열악한 필수의료 현실을 고려하면 공공의료 거점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하다는 것과 사업성이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공공성이 필요하다면 정부는 경제성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공공의료라는 명분만으로 규모와 운영 가능성을 검증하지 않은 채 사업을 밀어붙여서도 안 된다.

필요성, 적정 규모, 재정 부담, 의료인력 확보, 운영 지속 가능성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를 동시에 검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군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제 거창군이 물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거창군은 더 이상 “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말만 반복해서는 안 된다.

첫째, 예비타당성조사는 현재 정확히 어느 단계에 있는가.

둘째, 당초 300병상에서 200병상으로 변경한 구체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셋째, 2,300억 원으로 알려진 총사업비는 현재 얼마로 조정되는가.

넷째, 국비 100% 지원은 확정된 것인가, 아니면 사업 추진을 위한 전제에 불과한가.

다섯째, 200병상으로 축소할 경우 응급·중환자·수술 등 필수의료 기능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여섯째, 향후 병원 운영에 필요한 의료인력과 운영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질문이다.

“거창적십자병원 이전·신축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는 누구이며, 사업이 좌초되거나 규모가 크게 변경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거창적십자병원은 정치인의 치적사업도, 선거용 공약도 아니다.

수천억 원의 국가재정과 거창군민의 미래 의료환경이 걸린 공공의료사업이다.

따라서 거창군은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불확실한 부분을 숨길 것이 아니라 군민에게 먼저 공개하고 의견을 들어야 한다.

300병상이든 200병상이든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거창군민이 응급상황에서 제때 치료받고, 아이를 낳고, 중증질환을 치료받으며, 고령의 부모를 가까운 곳에서 돌볼 수 있는 병원이 되는가가 핵심이다.

정부와 거창군은 이제 ‘병원을 짓겠다’는 선언을 넘어 어떤 병원을, 어떤 규모로, 어떤 돈으로, 누가 책임지고 운영할 것인지​를 군민 앞에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거창적십자병원 이전·신축 사업이 진정한 공공의료의 희망이 되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전이 아니라 투명한 검증과 책임 있는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