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역사문화공간으로”
호주 선교사들의 거창 선교 역사가 책 한 권으로 정리됐다면 이제 다음 단계는 ‘공간’으로 역사를 남기는 일이다.
이미 부산·경남지역에서는 호주 선교사들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2023년 개관한 호주선교기념관은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호주 선교사들의 역사와 정신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부산·경남지역을 선교지로 삼은 호주 선교사들의 역사는 교육·의료·복지 등 다양한 영역으로 이어졌다.
거창 역시 이러한 흐름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① 거창선교역사의 ‘출발점’을 만드는 기념관
기념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거창 선교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다.
1909년부터 1941년까지 이어진 호주선교회의 거창지역 활동을 연대순으로 정리하고, 선교사들의 사진과 편지, 보고서, 당시 지도와 신문자료 등을 전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공간 구성이 필요하다.
▲ 제1전시실 – “호주에서 거창까지”
호주 선교사들이 고향을 떠나 한국에 들어온 과정과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소개한다.
호주 → 부산 → 마산 → 진주 → 거창
당시 선교사들이 거창에 들어오기까지의 여정을 지도와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제2전시실 – “거창의 선교사들”
스텔라 스코트, 프레더릭 매크레이, 제임스 켈리, 엘리자베스 에버리, 프레더릭 토마스, 제인 매카그, 에셀 딕슨, 엘리자베스 던 등 인물별 전시공간을 마련한다.
선교사들의 사진·한국명·활동기간·편지·보고서·사역내용 등을 각각 소개한다. 책에서도 이 여덟 명을 중심으로 개별 보고서를 수록하고 있어 향후 전시 콘텐츠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 제3전시실 – “복음과 교육”
호주 선교사들이 복음 전파뿐 아니라 교육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학교와 교육활동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현재 거창의 교육 발전과 연결해 설명하는 공간이다.
▲ 제4전시실 – “복음과 의료·돌봄”
선교사들의 의료와 보건, 여성·어린이 관련 활동을 소개한다.
특히 에셀 딕슨 등 거창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기록을 중심으로 당시 지역주민들의 생활상과 선교활동을 연결한다. 에셀 딕슨은 거창에 부임해 활동한 선교사로 소개되고 있다.
▲ 제5전시실 – “선교사의 하루”
이곳은 체험형 전시관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당시 선교사가 사용했던 가방과 성경, 편지, 의복, 생활용품 등을 재현하고, 선교사의 하루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면 역사교육 효과도 높일 수 있다.
“기념관은 교회만의 시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방식이다.
거창의 호주선교사 기념관이 건립된다면 특정 교회나 단체만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거창의 근대문화와 선교역사를 보여주는 역사문화시설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창군과 지역 교계, 역사학자, 향토사학자, 교육계,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또한 호주 현지의 교회와 선교 관련 기관, 선교사 후손들과의 교류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과 편지, 일기, 유품 등이 있다면 이를 디지털화해 국내에 소개하는 것도 중요한 사업이 될 수 있다.
“기념관 건립보다 먼저 해야 할 일도 있다”
기념관 건립에는 상당한 예산과 행정절차가 필요하다.
따라서 처음부터 대규모 건물을 짓기보다는 ‘호주선교사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구성 → 자료조사 → 유물 수집 → 선교유적 발굴 → 학술대회 → 전시관 조성 → 독립 기념관 건립이라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먼저 해야 할 것은 거창지역 호주선교 유적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고 기록하는 일이다.
당시 선교사들이 활동했던 교회와 학교, 의료시설, 주거공간 등에 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사해 ‘거창 호주선교사 역사길’을 조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념관을 중심으로 옛 선교 관련 장소들을 연결하면 하나의 역사문화관광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거창의 역사를 세계와 연결하는 공간으로”
호주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거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호주에서 출발한 젊은 선교사들이 부산과 경남을 거쳐 거창까지 찾아왔고, 그들의 흔적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역사와 지역사에 남아 있다.
따라서 거창의 호주선교사 기념관은 거창과 호주를 연결하는 국제교류의 거점으로도 발전시킬 수 있다.
호주 선교사 후손 초청행사, 국제 학술대회, 선교역사 사진전, 청소년 역사캠프, 호주 문화교류 행사 등을 개최한다면 단순한 기념시설을 넘어 새로운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
“130년 전 그들이 거창에 왔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호주 선교사들은 당시 아무런 연고도 없던 낯선 땅 거창을 찾아왔다.
그들이 남긴 것은 단순히 교회의 숫자가 아니다.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 교육에 대한 열정, 어려운 이웃을 돌본 희생,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었던 섬김의 정신이었다.
정춘석 원장은 말한다.
“그분들의 고생과 희생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지치지 않고 열정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기독교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창의 근현대사를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한다는 지역사적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거창은 선택해야 한다.
책 속에 남겨진 호주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과거의 기록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발자취를 찾아내고 보존해 거창의 역사문화자산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호주선교사, 거창에 오다』의 출간은 그 첫걸음이다. 이제 그 다음 걸음은 ‘거창 호주선교사 기념관’ 건립을 위한 지역사회의 논의가 될 수 있다.
130여 년 전 호주에서 거창까지 이어졌던 그 길을 이제는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