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대는 시간을 사랑 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간이야 말로 인생을 형성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연극무대이며 역사도 연극무대에 불과하다.  

 진시황이 책을 태워버린 일은 중국문화의 입장에서 큰 죄악 이였다. 그러나 그는 죄악의 절반만 책임지면 된다. 진지황은 백성이 책을 읽지 못하도록 전국의 책을 모아 함양 궁에다 넣어 놓았는데 후에 항우가 함양궁을 불살라버려 이 불길이 연속 3개월이나 탓 다. 얼마나 많은 서적과 국가의 기록물을 태워버렸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해서 중국문화의 기초가 단절된 것이 항우 에게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후세에 그 책임은 진시황 이 뒤집어썼다. 

 사무사(思無邪)생각에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엄정한 문화 교육을 거치지 않으면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한다. 생각에 사악함이 없도록 하기 위함 이다. 저의 13대 조 갈천(葛川)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오늘날 진정한 철학자가 없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말하는 철학은 기껏해야 다른 사람의 철학사상을 연구하는 데 불과 할 뿐이다. 특히 논문을 쓰면서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말했다고 한줄 베끼고 공자가 무어라 논했다고 한줄 베끼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철학을 베끼기만 하고 자기 철학이 없으니 씨 없는 과일 격이다. 

 글씨를 심화(心畵)라고 하는데 얕은 붓으로 같은 자첨을 보고 쓰는데 사람마다 글씨가 모두 다름이다. 그래서 붓글씨를 보면 쓴 사람의 개성, 수명, 장단, 앞날의 화복(禍福)을 알 수 있다. 당나라 태종이 고시제도를 확립하자 독서인들은 머리를 싸매고 십년동안 힘들게 공부하여 한 걸음 한걸음 공명의 장으로 뚫고 들어갔다. 오늘날에도 수당시대에 창립된 고시제도의 정진에 고시는 지식인 수당이후의 많은 문학 작품은 고시로 얻은 과거 급제하여 공명을 얻음으로써 집안을 빛내고 조상을 영광스럽게 하기를 기구하고 희망 했다.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심지어 황제인 건륭도 이름을 바꾸어 몰래 고시에 참가하여 진사에 합격하는 맛이 어떤 것인지를 느껴보았다. 옛날 아동교육 책에 이런 격언이 실려 있었다. ‘

 천자는 영웅호걸을 중시하니

 문장을 너희들에게 가르치노라 

 모든 것이 다 하찮은 것이요

 오직 글공부만이 높은 것이라 

 

 금과옥이 집에 가득하면 그것을 지킬 수가 없고, 부귀하고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고 했다. 하를 평정하고 60년 동안 황제를 하면서 청나라의 정치적 기초를 확립하였다. 한인 중에 청나라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은 것을 보고, 우선 투항하지 않는 지식인들을 모으려고 과거 시럼과목에 특별히 박학홍사과(博學鴻詞科)를 새로 두었다. 그들이 대충 이름만 써서 신청하면 형식적으로 많은 이들이 시험을 치르게 하고 이러한 유혹에 동요되어 박학홍사과에 응시케 했다. 좋은 벼슬자리도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사코 투항을 거부한 사람들도 많았다.

 눈앞의 키 큰 나무 모두 아들 손자뻘이니 

 오나라 궁전 봄을 몇 번 지냈는지 보았을까

 내가 만약 당시 궁전 동량 되었더라면 

나 역시 마찬가지로 불탄 재로 되었으리라 

이 시는 실의가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첫 구절에서 당시 국가의 동량이 모두다 그의 후배들임을 탄식하고 신목처럼 자기는 나이가 많아 왕조의 교체 흥망 성패를 여러 차례 보았다는 것이다. 만약 자기도 당시에 궁궐의 동량이 되었더라면 벌써 불살라져 버렸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인생에서 득의한 일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도 꼭 좋은 것만도 아니며 어떤 때는 실의 한 것도 꼭 나쁜 것이 아니다.